부산작가회의 시평- 4월 거리에 앉아서
작성일 23-12-07본문
4월 거리에 앉아서
부산작가회의 김남영
도미야마 이치로는 “휘말림”에 대해 이렇게 기술한다.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만, 이미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느끼는 감각이 휘말림이다. 물론 휘말림에는 뚜렷한 분할선이 존재하지 않지만 전적으로 자신의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왠지 그 일은 자신의 일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래서 휘말린다는 말에는 이중 삼중의 감정이 교차한다. 어쩌면 휘말려 들어간다는 것은 나의 위기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적당한 핑계가 필요했고 그 핑계 속에 눌러 앉는다. 먹고 사는 일이 어려운 일처럼 타인의 고통을 잊는다는 일도 어려운 일이다.
어김없이 사월의 달력에 숨어 달라붙어 있다가 어김없이 그것은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겁쟁이처럼 사월이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이다. 그 마음은 어디엔가 달라붙어 있다가 불현 듯 찾아온다. 나는 겁쟁이임이 틀림이 없다. 석삼년이 흘렀다. 함께 버스를 타고 다시는 이런 무책임하고 불가해한 세상을 만들지 않겠다며 말하던 그 입의 가벼움에 비해 시간의 하중은 이리 무겁다. 비장한 질주를 꿈꾸며 버스에 올라탔던 그들은 도중에 하차했다. 애초에 목적지가 달랐다. 이정도 하면 됐다는 자족적인 기준이 어깨를 무겁게 누른다. 자명한 것이 아닌가. 통상적인 연대의 영역에서 이미 틈은 예정되어 있었고 그것을 포착하는 눈은 무디어져 갔다. 그대들은 어디로 갔는가. 마음은 무거웠지만 부채의식의 그림자는 희미해져 간다. 새삼 느끼지만 나의 감각은 늘 한 발 느리다.
부산작가회의 집행부 카톡방에 세월호 9주기 문화제 행사가 고지되자 무의식적으로 참여의사를 밝힌다. 문화제가 있기 지난주에 나는 10.29 참사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에 참여하였다. 머리 위로 내리쬐던 태양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윤석열 사퇴하라는 몇 번의 구호를 외치고 그 구호로 그 빛을 막고 바닥에 앉아 있으니 지나가는 젊은이들이 보였고 무심한 표정과 귀를 막고 지나는 그들 머리 위에도 태양은 사정이 없다. 바닥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서면 특유의 하수구 냄새는 어쩌면 이 도시의 신음을 대변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임자 없는 욕설이 목구멍을 밀고 올라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일주일 뒤 서면으로 나왔다. 지나간 기억들이 밀려들고 나는 팽목항에서부터 지금 여기까지 있었던 일들이 환상처럼 지폈다. 다시 바닥에 앉아 부산민예총이 기획한 행사를 본다. 지폈던 환상은 못 다한 애도로 변화하였고 울려 퍼지던 세월호 합창단의 노래 소리는 빌딩 사리로 유영을 하듯 빠져나간다. 공교롭게도 합창단의 한 분이 내 옆에 앉게 되었다. 그는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 없다는 말을 하였다. 옆에 계신 회장님이 그 이유를 물어보니 그의 대답은 “슬퍼서.” 참았던 눈물이 난다. 손수건을 준비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은 소박하다. 그래, 슬프다.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예외 상태가 상례화된 현실. 과거의 어느 비평가가 우려했던 세계가 현실이 된 지금, 여전히 금지를 통한 법의 형성은 더더욱 인간다움을 부르짖는 가련한 다짐을 하지만 권력은 약자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욱 약자는 결코 강자를 용서하지 못한다.
철학자 김영민이 말하듯 “용서의 실체는 도덕주의적 강박이 오히려 밀어내는 잉여의 실재에 의해서 그 불가능성을 고스란히 드러낼 뿐이다.” 그 불가능성을 넘어서겠다는 말은 오히려 기만적이다. 우리는 과연 용서를 도난당했다. 처연한 노래가 서면 바닥을 가로지르고 연극배우의 말이 폐부를 찔러댔다. 배우의 말은 부당함 그 자체였으나 석삼년이 지난 지금, 다들 분노하기보다는 적응하고 살아남을 궁리만 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얼마큼 위축되어 있었나.
진도북소리로 문화제 행사는 마무리되었다. 집단이 만들어내는 군무는 언제나 위로가 된다. 북소리는 증폭이다. 폭발하는 힘이다. 그 힘의 증폭은 북소리의 증폭을 통해 사건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그 힘은 다른 종류의 힘을 갖게 한다. 다른 것들, 다른 영역으로 퍼지고 확산되는 힘, 다른 어떤 것들에 작용하여 변용시키는 힘, 그리하여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무언가를 하게 하거나 생각하게 하는 힘. 그 힘이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으니 이제 일어나야만 한다. 바닥을 세게 치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