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작가회의 시평 -뼈와 꽃 <오월항쟁 43주기 2023 오월문학제>를 다녀와서
작성일 23-12-07본문
뼈와 꽃
<오월항쟁 43주기 2023 오월문학제>를 다녀와서
–부산 작가회의 김지숙
“근데 5.18이 뭐예요? 전두환 손자가 광주에 갔다 어쨌다 왜 저 난린지... .”
TV 뉴스를 보며 미장원 원장님이 물었다. 역사적 맥락을 설명해드리는 동안 그게 지금 우리 사는 거랑 뭐 그리 상관이 있나 와 닿지 않는다는 듯한 원장님의 표정은 아직도 숙제처럼 남아있다. 역사공부는 지겨운 암기과목 쯤으로 여기거나 돈 많은 백수에서부터 로또 당첨, 돈 많이 버는 직업 운운하는 아이들의 꿈 역시 그저 우스개로 넘기기가 어렵다. 어른들의 세계를 엿보며 배운 게 그게 다일 테니 무턱대고 아이들을 나무랄 수도 없는 일. 자본의 논리에 얽매인 위태로운 삶 속에서도 지켜야할 인간 존엄의 가치를 가르치기보다 당장 내 집값이 출렁이면 세계평화, 기후위기, 세월호, 이태원 참사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어른들의 속물적 속내를 아이들이 다 보고 있는데 말이다. 이를 그대로 반증하는 게 바로 현 정권의 탄생과 일련의 어처구니없는 행보들인데 말이다. 대통령이 한 나라의 상징적 얼굴이라면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지금 딱 윤석열 정권 수준인 것이다.
이번 오월문학제 역시 작품마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폐해와 진정한 상식과 공정에 반하는 현 정부의 위태로운 행보에 대한 날 선 문제의식과 가장 아프고 낮은 곳에 자리매김 하고자 하는 문학인들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졌다. 오월문학제 현장과 더불어 거리 곳곳에는 플랜카드가 펄럭이고 둥둥 북소리, 함성소리가 출렁거렸다. 전일빌딩245와 전남도청으로 이어진 길은 여러 노동자 단체의 집회 열기로 뜨거운 상황이었다. 우리가 치열하게 일깨워야하는 오월정신과 정의의 목소리 현장 한가운데서 국민이 주인임을 선언하는 작가선언 낭독문과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우리의 삶과 역사가 여전히 변증법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이끄는 불빛은 바로 그날 오월의 그들이 든 촛불인 것이다. 전남도청 위로 한없이 아득해지는 하늘, 전일빌딩에 박힌 245개의 탄흔인 듯 별들이 더욱 선연해지는 밤이었다.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이튿날은 국립5.18민주묘지의 추모탑 앞에서 묵념을 마치고 신묘역과 구묘역까지 둘러보았다. 구묘역으로 가는 길 때죽나무 그늘 아래에 별 모양 흰 꽃들이 떨어져 있었다. 흰 별들이 땅에 뚝뚝 내려와 앉았구나 수우시인님의 말씀에 유영봉안소에서 눈 맞추었던 어린 아가들의 눈동자가 떠올라 흰 별들이 내려앉은 흙이 더 붉어 보이기도 했다. 구묘역에서는 여러 단체 사람들이 제각각의 깃발 아래 모여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깃발은 달라도 모두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으리라 싶어 동지애도 느꼈다. 박정애 시인님이 미리 준비해 오신 꽃바구니를 이한열 열사의 묘에 두며 비를 쓰다듬는 모습에는 모두 숙연해졌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은 아득히 먼 어디까지 다녀온 것 같아서일까. 묘지를 돌아 나오는 동안 우리들의 뒷모습이 조금씩 닮아진 것 같았다.
하긴 돌이켜 이 땅에 피와 살과 뼈, 한 많은 죽음을 먹지 않고 핀 꽃이, 생명이 어디 있을까. 전일빌딩245의 역사기록관에서 본 추모영상이 다시 떠올랐다. 붉은 물결과 뼈들이 서서히 희고 아름다운 꽃으로 만발해가고 어느새 검은 바다 위로 찬란한 달이 떠오르던 영상의 제목은‘뼈와 꽃’이었다. 이렇게 여전히 뜨거운 광주의 오월을 어떻게 세상 속으로 실어 나를까 꽃피우게 할까.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그림자를 데리고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아름다운 것은 피나 죽음 없이 오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일련의 일정을 마무리 하며 나는 발터 벤야민의 책에서 읽었던 문장을 떠올렸다. 정말 아름다운 것은 피나 죽음 없이 오기 어려운 것인가. 아름다운 것은 그런 것인가. 더 얼마나 많은 피와 죽음이 바쳐져야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벤야민은 이어서 말한다.‘그렇다고 처음부터 죽음을 도모할 순 없다. 절망과 환멸 속에서도, 그러나 폭력과 죽음에 기댐 없이, 우리는 미를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는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이 아닐까 싶다. 그의 문장은 이번 오월문학제의 슬로건을 오래 되새기게 만들었다. 오월의 정의, 문학의 실천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