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홍 문학상 논란에 대하여
작성일 24-06-25본문
김대갑 소설가입니다.
오랜만에 게시판에 들어오니 몇 가지 논란이 보이는군요.
발단은 이주홍 선생의 친일 작품 논란입니다. 멀게는 1966년 임종국 선생의 친일 문학론에 5편이, 2004년에 박태일 교수가 8편을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24년 2월 달에 부산일보 기자가 신문에 이주홍 선생의 친일 작품을 보도하면서 부산지역에서 공론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산작가회의에서 부산 문학인의 자긍심이라고 추앙하는 요산 선생도 친일 작품을 남겼다고 박태일 교수가 주장한 사실이 있습니다. 구글에서 “요산 김정한 친일 작품”이라고 검색해 보세요. 여러 신문에도 보도가 되었더군요.
(2002.4.12. 오마이뉴스. “소설가 김정한 친일 작품 썼다.”
민족 문학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요산 선생이 친일 작품을 남겼다......
만일 박태일 교수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요산 선생의 제자들이나 그분을 추앙하는 분들은 부정하고 감추고 애써 언급하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그건 서정주나 이광수, 김동인을 흠모하는 자들이 그들의 친일 행위를 덮으려고 하는 심리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요산 문학상을 주관하는 신문사가 부산일보입니다. 그런데 그 부산일보는 일본 장교 출신인 박정희가 만든 정수장학회가 100퍼센트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모순입니다. 일제에 항거했던 요산 선생을 기리는 문학상을 친일파 장교가 만든 단체의 신문사에서 주관하다니
안타깝게도 한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런 모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친일 문인 사전에 등재된 문인들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한국 문단의 거대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들의 제자들이 지금도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며 다시 제자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들이 배출한 수많은 문인이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한국에서 창작 활동을 하는 문인들은 친일문학을 양산했던 문인들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은 친일파 후손 세력입니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 일가와 국회의원들 다수가 친일파 후손입니다. 일제강점기와 분단을 거치면서 남한이나 북한이나 모순된 상황에 부닥쳐 있고 그걸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알고는 있는데 그 문제를 당장 해결할 방도는 없어서 지금은 그냥 안고 가는 겁니다. 친일파 세력은 그 뿌리와 실체가 너무 거대합니다. 그게 한국의 현실입니다. 친일파 청산은 지속적으로, 시간을 두고 정밀하게 해야 하는 운동입니다.
그리고 이미 다민족, 다인종 사회에 접어든 한국 사회에서 민족 문학이라는 거대 담론이 과연 맞는 건지 의문입니다. 한국작가회의 부산지회가 민족 문학작가회의의 후신이라는 틀에 갇혀서, 민족 문학이라는 의제에 너무 함몰된 건 아닌지 뒤돌아봐야 합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왜 한국작가회의로 이름을 바꾸었을까요?
부산작가회의의 회원이 283명입니다. 과연 이 분들 중에 민족 문학이라는 대의에 동참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솔직히 지금 부산작가회의 회원들은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중도파 등 여러 생각을 가진 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민족 문학의 대의를 말하기는 무척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동인문학상 논란이 터졌을 때, 부산소설가협회의 분위기는 대다수가 축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상자에게 무수히 많은 회원이 축하 문자와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축하의 말을 건넨 대다수 소설가가 또 부산작가회의 회원들입니다.
부산작가회의 대표가 동인문학상 수상에 대해 강경한 어조로 비판적인 성명서를 냈는데, 그 단체에 소속된 소설가들 대다수가 동인문학상을 축하했다? 도대체 이런 모순된 현실을 두고 과연 어찌 생각해야 합니까. 이런 부산 문단의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외부인의 견해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건 아닌지 또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창작활동을 하는 분들은 자유로운 영혼이며 그 어떤 구속도 싫어합니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모인 조직에서 친일문학상 수상에 대한 지침을 논의한다는 발상에 저는 심각한 의문을 가집니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무슨 일사불란한 군사 조직이나 정치조직도 아닌데 무슨 지침을 만들고 그걸 회원들에게 배포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역대 부산작가회의 회장으로서 이주홍 문학상을 받은 사람들은 어찌 됩니까? 여태껏 수많은 회원이 이주홍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분들은 이주홍 선생님의 친일 작품 보다는 그분의 문학적 성과를 흠모하기 때문에 이주홍 문학상에 응모했다고 여겨집니다. 요산문학상도 마찬가지겠지요.
솔직히 친일문학인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김동인과 이광수, 서정주는 자발적으로 창씨 개명하면서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했습니다. 그들은 아주 악질적으로 일제를 위해 글을 썼고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았습니다. 그러나 그에 반해 이주홍 선생은 연성이었어요. 그렇게 악질적인 친일 행동을 하진 않았거든요. 그래도 60편의 친일 작품을 남겼으니 그리 가볍지만은 않습니다만.
이번에 이주홍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과 소설가는 이주홍 선생님의 친일 작품 논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그분의 문학적 성과를 기리는 것에 더 방점을 두고 상을 수상했을 겁니다.
현재 이주홍 문학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부경대학교 안으로 옮겨갔고, 이주홍 거리도 만든다고 합니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부산작가회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주홍 문학상을 페지하라고, 이주홍 문학관을 폐쇄하라고 부경대학교 측에 압박해야 할까요? 솔직히 현실적으로 이건 당장 어렵다고 봅니다. 그럼 서서히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이주홍 문학관에 이주홍의 친일문학 작품을 전시하라고 부산작가회의가 앞장서서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원에 있는 이원수 문학관에도 이원수의 친일 행적을 전시했습니다. 만일 요산 선생의 친일 작품이 사실이라면 그분의 친일 작품 내용도 요산 문학관에 적시해야 합니다.
부산작가회의가 대외적으로 친일문학상 거부에 대한 결기를 보여주고 여러 세미나와 토론회, 연구 활동을 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만일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에 대한 토론회가 열리면 저는 언제든지 토론에 응할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문학상에 응모하는 것은 창작자의 판단이고 그의 몫입니다. 비난을 받는 것도 그의 몫이고 그의 그런 행위에 대해 판단하는 것도 독자의 몫입니다. 회원끼리 서로 설전을 벌이고 토론하는 것도 그들의 몫입니다. 작가회의 집행부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지침을 만든다는 것은 좀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논의 중이라니 좀 더 지켜보겠습니다.
부산작가회의는 부산의 문인들이 모여 만든 단체입니다. 그럼 부산의 문인들에게 창작 의욕을 고취하고 서로의 명예를 지켜주는 조직으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으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회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회원 서로를 보듬어주고 회원들끼리 친목과 교류의 장을 만들어줘서 창작에 전념하도록 해 주는 것이 작가회의의 기본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부산작가회의는 이제부터 친일 논란에 휩싸인 상을 받는 회원 개인의 행동에 대해 단체 명의의 어떤 행동을 하겠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어떨까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서 내부적으로 대립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작가회의가 친일문학상 수상에 대해 지침을 만들었다는 말을 저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부산작가회의는 지역의 문학단체로서 그 나름의 위상을 가지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 될 것 같은데요. 저의 취지를 잘 감안해서 집행부가 현명하게 판단하기를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저의 주장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친일 문인을 기리는 문학상이든 무슨 상이든 개인이 수상한 상에 대해서 부산작가회의가 단체 이름으로 어떤 행동을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둘째, 이주홍 문학관에 정식으로 요구해야 합니다. 이주홍의 친일 작품 활동에 대해 전시하라고 말입니다.
끝으로 저는, 여태껏 친일 문인들에 대해 아주 강경하게 비판의 날을 세운 사람이며 페이스북에 그런 견해를 여러 차례 표명했습니다. 당연히 동인문학상이나 이주홍 문학상 같이 친일 논란에 휩싸인 문학상에는 관심도 없고 받을 생각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