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문 소설가의 독서 일기- 8) ㆍ작별하지 않는다ㆍ
작성일 23-04-27본문
8) ㆍ작별하지 않는다ㆍ
한강
문학동네 329P
2021년 1판 7쇄
제주 4ㆍ3사건 후 학살된 가족을 찾기위한 서사다.24살의 동갑네기 두 친구는 잡지사 기자와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로 만난다.제주에서 자란 인선이는 어머니가 체험한 비극을 다큐멘터리로 만들기위해 경하의 도움을 받는다.실종된 가족을 찾기위해 살아 남은 자들이 부채를 지고 가듯 지난 역사 찾기를 시작한다.1948년과 1949년에 재판없이 수감된 제주 수형인 명부와 보도연맹 학살 사건들을 복기한다.그 겨울 삼만명의 사람들이 제주도에서 살해되고,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명이 살해된다.무슨 이유로? 빨갱이들의 절멸을 위해서다.섬사람들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하달되었다.
원한이 가득찬 이북 출신 극우청년단들이 이 주간의 훈련을 마친뒤,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제주도로 몰려 들어왔다. 해안이 봉쇄되고 언론이 통제되었고,갓난아기의 머리에 총기를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으며 오히려 포상까지 받았다.그렇게 죽은 열살미만 어린 아이들이 천오백명이나 되었다.그 전례에 피가 마르기도 전에 전쟁이 터졌고,제주에서 했던 그대로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추려낸 이십만명이 트럭에 실려 운반되고,수용되고 총살돼어 암매장 당했다.누구도 유해를 수습하는 게 허락되지 안은채 전쟁은 휴전되고 휴전선 너머에는 여전히 적이 도사리고 있다.낙인 찍힌 유족들도 입을 떼는 순간 적의 편으로 낙인 찍힐것을 알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침묵했다.(317P)
살아 있는 자들에게는 끝없는 고문이 시작되었다.수건으로 덮은 얼굴에 끝없이 물을 부었고,젖은 가슴을 야전 전화선으로 묶고 전기를 흘려넣었다.산사람과 내통한 사람의 이름을 대라고,빨갱이 새끼들의 씨를 말리기 위해서.
아버지와 외삼촌이 희생된 인선은 최소한의 예산으로 영화를 만들던 십 년 동안,자료 조사와 섭외부터 모든 걸 혼자 해냈다.
속솜하라.동굴에 숨어서 아버지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숨을 죽이라는 뜻이다.움직이지 말고 아무 소리도 내지 말라는 의미다.
인내와 체념,슬픔과 불완전한 화해,강인함과 쓸쓸함은 때로는 비슷해 보인다.어쩌면 당사자들도 정확히 분리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5월 광주를 다룬 저자의 다른 소설 (소년이 온다)에 비해 박진감이 다소 떨어지지만, 수많은 자료들을 찾아 소설을 써 낸,사력을 다한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