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문학상 수상에 따른 논란을 보고
작성일 23-12-10본문
부산작가회의의 성명서, 그리고 정영선 소설가의 반박문, 그리고 게시판에 오른 또다른 글을 읽었다. 과문이어서 정 작가가 동인문학상을 받게 됐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는데, 우연히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다가 부산작가회의의 성명서가 게시된 것을 읽었다. 작가회의 홈페이지에 들어와 보니 해당 성명서가 문패에 걸려 있는 것도 발견했다.
성명서를 읽은 후 제일감은 이런 것이었다. 정 작가의 해당작품은 한국현대사의 아픔을 곡진하게 그려낸 좋은 작품이고 다른 좋은 문학상을 받을 기회가 많을 텐데 하필이면 공교롭게도 동인문학상 쪽에서 먼저 작가에게 수상 제의가 왔을까...하는 것. (사실, 작품 자체만 놓고본다면, 부산작가회의가 되풀이 강조하는 '요산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다.)
어쨌거나, 작가도 역사내적 존재이고, 공적인 존재이다. 작가가 작품을 집필한 다음 그것을 발표하고, 책으로 내는 행위 역시 공적인 행위임에는 말할 나위가 없다. 어떤 문학상의 수상 대상작으로 논의되고, 수상자로 선정되는 과정은 작가의 행위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지만, 수상자가 되기로 수락하는 것은 작가의 공적 선택의 영역이기도 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공적 행위는 공적 평가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을 이야기하자는 거다. 다르게 말하자면, 정영선 소설가의 동인문학상 수상이라는 공적 행위는 부산작가회의는 물론, 어떤 다른 문학단체나 혹은 개인의 평가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고, 부산작가회의가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는 행위 자체가 문제가 된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자는 거다.
동인문학상은 그동안 꾸준히 비판의 대상이 되어온 문학상임에는 틀림없다. 수상작 또는 심사 대상작으로 선정된 일부 작가들이 이것을 거부하기도 했고, 한국작가회의를 비롯한 문단 일각에서 그 상의 이름을 딴 동인의 친일행적, 그리고 그 상을 주관하는 조선일보라는 신문의 정체성, 그 상을 선정하고 주는 방식의 문제점 등을 들어 비판해 온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동인의 친일행적이라는 것은, 이번 작가회의 성명서에서 자세히 설명했으니 반복은 피하겠다. 조선일보가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도 행하고 있는 민주진보세력에 대한 음해와 부당한 비판, 갈라치기 역시 그 문제를 바라보는 개인 생각의 편차도 있으려니와 잘 알려진 바인만큼 재론은 피하자.
다만, 한가지는 말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조선일보는 전통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부분엔 보수(대개는 극우)의 논조를 펼쳐오면서도 독자 확장 전략의 하나로 문화 부문에는 연성 전략을 펴왔다는 것. 이를테면 진보 진영으로 분류되는 문화인에게도 적당히 지면을 할해하고, 그들의 작업을 소개하기도 하고, 나아가 이런 상도 주는 이중 방식을 펴왔다는 거다.( 이 대목이 많은 진보 문화인들의 함정이 되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다시 말하자면, 정영선 작가의 해당 작품이 도무지 동인의 행적이나 조선일보의 논조와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상극의 지점에 있는 작품인데도 조선일보가 상을 줬단 말이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는 건 앞에서도 이야기 했다. 그 후 제이감이 바로 "아하, 조선일보는 역시 영악한 신문이로구나"하는 생각. 이번에 심사한 심사위원들 김인숙, 정과리, 구효서 같은 이들도 한국 문단에선 꽤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인데 이런 사람들이 수상자보다 훨씬 더 책임을 져야할 심사위원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이 신문의 전략이 얼마나 한국 문화계에 폭넓게 파고들어 있느냐는 걸 다시 절감했다고나 할까.
내 개인적으로는 동인의 이름을 딴 상의 명칭도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또 다르게는 조선일보가 '동인문학상'을 도구로 한국 문단을 지배하고 재편하려는 음험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꺼번에 조용히 심사대상작을 정하고 심사해서 상을 주는 다른 문학상과는 달리, 이 상은 '독회'니 뭐니 해서 거의 1년 내내 그 상을 주는 과정을 공개해서 지면에 미주알고주알 올린다. 그리고 몇차례에 걸쳐 '서바이벌'방식으로 이 작품은 이래서 떨어트리고, 저 작품은 저래서 떨어트리고 하는 식이다.(요즘은 조선일보를 안 본지 너무 오래돼서 어떤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다시 말해 쓸만한 한국작가들을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심사대상작이란 이름 아래 한끈에 엮어 줄을 세우고, 이러쿵 저러쿵 평가를 멋대로 평가를 가하는 방식이 조선일보란 매체가 가진 권위주의적 방식과 너무 닮았다. 글쎄, 상을 주겠다면 저희들끼리 모여서 작품 하나를 골라 주면 되지, 수상작 선정이 무슨 텔레비전의 예능쇼도 아니고 지나치게 비문화적이며 권위적이고 상업적이다. 도대체 상을 주고 받는 행위가 '오징어 게임'처럼 되어서야 되겠는가. 신문 부수와 두둑한 상금을 무기 삼아 상 하나로 한국 문학판을 지배하려는 속셈이 투명하게 들여다 보인다는 거다. (나는 작가들이 이런 모욕적인 선정 방식에 대해서도 항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언부언이 되었지만, 그런 점에서 부산작가회의가 동인문학상을 두고 문제를 제기한 행위는 '공의(公義)'라는 관점에서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명서를 낸 시점이나, 방식에 대해선 아쉬움이 적지 않다. 동인문학상이 가진 여러 문제에 대한 지적이 한 두해 있어왔던 것도 아닌데, 하필이면 회원 작가의 수상을 가지고 이렇게 날 선 성명서를 내야했을까 하는 점이다. 정영선 작가는 공적 대상이기도 하지만, 부산작가회의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자기 구성원에 대한 비판에도 엄정해야 공적인 의사를 표명할 도덕적 권위를 가질 수 있다는 원칙론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그 비판엔 동료에 대한 애정과 걱정이 담겨야 한다고 믿는다.(수상자 본인이 동인문학상을 만든 사람도 아니고, 반사회적인 작품을 발표한 것은 더구나 아니며, 그저 주겠다는 상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정도로 회원이자 동료를 이렇게까지 모진 언어로 타매했어야 하는가.)
또한, 비판에는 균형과 비례의 원칙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을 주는 곳의 음험한 의도를 비판하는 대신, 받은 사람에게만 몰매를 때리는 방식은 공정하지도 않고 균형적이지도 않다. 부산작가회의는 이번 성명서에서 김동인의 친일행적에 대한 부각과 더불어 조선일보의 문화계 갈라치기, 문화계 지배전략도 함께 비판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 전략에 투항하고 복무한 이른바 '중앙'의 그 잘나신 문화인들에 대한 비판을 앞세웠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연후에 그에 대한 대응을 아직도 충분히 하지 못한 진보 진영 문학인과 단체의 안이함(부산작가회의 자신을 포함해서)에 대한 자성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수상을 수락한 작가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으면 균형적이었을 거다. 상을 준 놈이나, 심사한 놈에 대한 비판을 생략한 채 오로지 "너 왜 그런 상 받았냐?"고 한 개인 작가에게만 몰매를 때릴 일이 아니란 거다.
그 비판에도 중용이 있어야 한다. 날이 서다못해 시퍼래서는 한국의 그 숱한 상 중의 하나를 받았다는 이유 만으로 작가를 사회적으로 반죽음 시킬 정도로 매장하는 것이 글쓰는 이들의 단체의 언어인지 궁금하다. 비판을 하되 우리 모두 함께 성찰할 수 있는 언어를 고르기가 그렇게 힘들었던 걸까. 글 쓰는 이는 모두 칼날 위에 선 어릿광대와 같다. 지금 비판을 가한 그 개인, 그 단체가 다른 계기에 비판의 대상이 되지 말란 법은 결코 없다. 자신이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과연 과도한 비판을 접하고 과연 어떤 생각이 들지도 한번쯤 생각해 보잔 이야기다. 설사 비판은 하더라도 그 언어는 섬세해야 하며,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김동인과 요산을 즉각적으로 대치 시키는 방식도 반드시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요산이 항일작가군에 속하는 것도 옳고 김동인이 친일행적을 벌였다는 것도 옳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부왜한 작가가 한 두명은 아니다. 이광수, 서정주, 김동환...꼽자면 열 손가락, 아니 수십 손가락으로도 모자랄 정도다. 문론 항일문학인도 있다. 이육사, 윤동주, 한용운...이게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이 문학에 미친 영향이기도 하다. 친일문학인을 비판하고, 타산지석으로도 삼아야 하겠지만, 요산과 김동인이 직접적인 은원관계로 얽힌 사람들이 아니고 보면, 요산은 많은 항일문학인의 한 사람이고, 김동인은 또 더 많은 친일문학인의 한 사람인데, 하필이면 그 두사람을 대척점의 대립항으로 놓고 직접적으로 연관시킬 일만은 아니라는 거다. 그렇게 따지면 무수한 대립항이 생기게 되지 않나. 요산 문학상을 받은 이가 동인문학상을 받았다고 두 선배문인을 특정해서 연결시켜 굳이 비판한 양이면, 모든 친일문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을 수상한 그 숱한 사람도 똑같이 비판해야지, 요산-동인의 대립항에만 비판을 집중하고, "요산문학상 받고, 요산기념사업회에서 활동한 사람이 동인문학상을 받았으니 죽을 죄를 지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건, 형식논리로는 옳아보일 지는 몰라도 내용적으로 균형적이지 않다.
요약하자. 부산작가회의의 성명서는 단체의 설립 취지로 봐서 낼 수는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그 계기에 의문이 있고, 그 내용에 결락이 있었으며, 한 개인 작가에 대한 지나치게 과도한 비난은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
다음으로는 정영선 작가에 대해서도 한마디.
자기가 나선 것도 아닌데 알아서 주겠다는 상을 굳이 마다하는 작가는 그다지 없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해서 주겠다는 상을 안 받겠다고 하는 것도 어찌보면 자연스럽지 않다. 더구나 그 상이 논란이 있지만, 잘 알려진 상인 다음에야. 게다가 지역에서 외로이 작품활동을 하다가 전국 단위의 작가로 성장할 수도 있는 것이라면.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인지상정일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상을 받기로 한 작가의 선택도 존중한다.
그럼에도, 작가가 작품을 내고 그 결과로 상을 받는 행위 역시 공적인 행위라고 한다면, 그 결과에 따른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하고, 또 그에 따른 일정한 비판은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로 있을 수 있음은 인정해야 한다. (그 비판에 대한 반론은 역시 작가의 권리이지만, 그 비판 행위가 공적으로 발현될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인정해야 한다는 거다.) 자신에게 주어진 비판 중에서 반론할 건 하고, 받아들일 건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일 아량은 필요하다고 본다.
작가 자신은 논란의 동인문학상 수상 수락을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고 했고, 그 고민의 결과를 종합해서 수상을 수락했다고 하니 그 선택은 개인의 판단의 영역으로 존중하지만, 그에 따른 동료 작가 일부나 단체의 비판에 대해서 섭섭해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비판이 왜 나왔는지에 대해서도 일정부분 성찰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작가의 반론문에 보니, 주위 가까운 동료와는 의논을 거쳤다고는 하나, 선배와 동료 작가들과 좀 더 깊이 있게 상의하고, 자문도 구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어쨌거나, 동료 작가의 문학적 고민과 노고가 가져다준 문학상 수상을 놓고 기쁘게 축하하고, 축하받지 못하는 현실이 한편으론 서글프기도 하다. 이런 논쟁이 한편으론 필요한 측면이 있다고는 해도 더는 무익한 말꼬리 잡기이거나 인신공격 수준으로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쯤 했으니, 다들 자기 책상에 앉아 스스로를 성찰하고 열심히 글이나 쓰는 게 옳을 것이다. 정영선 작가 역시, 스스로 다짐한 대로 열심히 더 좋은 문학 작품을 만들어 독자에게 선보이기를 기대하고, 이번 일이 작가라는 공적인 존재에 대한 새로운 성찰의 계기로 작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