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반성하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된다.
작성일 23-12-11본문
돌이켜 반성하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는 단순한 사실과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이다.
만약 우리가 그 고통을 내 것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잔인하게 반복되는, 반성의 고통이다.”
- 수 몽 키드
안민시인입니다.
최근 요산기념사업 이사회의 이사이면서 부산작가회의 회원인 작가 한 분의 ‘동인문학상’ 수상 건으로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금번 사태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상 당사자인 그 작가분의 입장에서도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대다수가 그렇듯 경제적으로 그다지 여유로운 형편이 아닌 작가가 거금의 상금이 걸린,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변방의 작가가 전국적 지명도를 提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상의 수상을 거부하기란 쉽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참으로 인간적인 고뇌가 깊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부분은 사적인 거고 작가라는 공적인 영역에선 ‘아니다’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글을 올리는 지금 저 또한 나약하고도 우매한 인간이기에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용기를 가지고 글을 올림을 고백합니다. 미시적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분들이 있기에 저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1. 우리에게 ‘일본’이라는 나라의 의미.
모든 분들이 주지하시듯 일본(왜국)은 삼국시대부터 끊임없이 우리 땅을 노략질해 왔으며,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일으켰습니다. 급기야 근세엔 우리나라를 강탈하였을 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입니다. 일제의 야욕으로 종전 때까지 7000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습니다. 그중 우리 민족 600만 명*이 심한 고초를 겪었습니다. 일본이 우리 민족에게 자행한 만행은 생체실험과 성노예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악질적인 짓을 한 것입니다. 그 암울한 시기에 戰場, 생체실험 현장, 지옥처럼 열악한 공장, 탄광의 지하 막장 등 우리 민족의 피눈물이 스며있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거기다 1923년 관동대학살로 무려 6천 명 이상이 학살당했습니다. 차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잔인하고도 사악한 짓을 자행하고도 반성 없는 나라가 일본입니다.
2. 망각과 외면
놀랍게도 지금도 일본을 미화하고 추종하는 세력이 우리 한반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롯한 친일사관을 지닌 집단이 정계, 학계, 언론계, 재계 곳곳에서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세계가 인정한 근면하고 우수한 민족임에도 치명적인 단점으로 지적받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망각의 민족’ ‘외면의 민족’으로 불리는 게 그러한 예입니다. 친일 문제나 과거사 청산 문제가 언급될 때마다 “좋은 게 좋다”며 “이제 덮자”라고 합니다. “과거를 자꾸 언급해서 좋을 게 뭐 있냐, 이제는 미래를 지향하자”라고도 합니다. 《징비록》을 보면 임진왜란 당시도 일본에 직접 도움을 준 숱한 친일파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까지도 친일 반민족 행위는 곳곳에 존재합니다. 현재 보수의 탈을 쓴 정권과 그 추종자들이 일본을 이롭게 하는 행위는 나열하지 못할 만큼 많습니다. 한미일 군사동맹,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성착취 피해자 분들의 상처 가득한 가슴에 소금을 뿌려대는 일들이 그러합니다. 특히 이런 사악한 행위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며 왜곡하는 게 조중동 등의 친일 언론입니다.
3. 역사의 반복
새뮤얼 스마일즈는 그가 쓴 《자조론》에서 “모든 국가는 그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 고 했습니다. “고상한 국민은 고상하게 다스려질 것이고, 무지한 국민은 무지막지하게 다스려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일본의 마지막 총통 아베 노부유키가 우리나라를 떠나면서 남긴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우리는 다시 돌아온다."
친일 위정자들과 친일 오피니언 리더들은 우리 주권자가 시비를 가리거나 깨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주권자가 무지할수록, 무비판적일수록 그리고 가난할수록 자신들에게 유리합니다. 그러므로 친일 매국 신문사가 버젓이 주관하는 ‘동인문학상’ 같은 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4. 작가 정신과 공인
저는 부족하고 아둔한 시인지만 작가란 '시대의 공인’이라는 생각을 확고히 하는 사람 중에 한 명입니다. ‘작가정신’이 의미하는 것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실 것입니다. 작가는 자신이 한 행위 즉, 태도와 자세와 언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까닭에 이번 동인문학상 수상에 동의한 분은 그 상으로 인한 明暗에 대해서도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샤를르 드골은 나치 협력자와 조력자들을 처단하고 "프랑스가 외국인에게 점령될 수 있어도 내국인에게는 더 이상 점령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2차 대전 후 드골은 가장 먼저 많은 언론인과 작가를 처형했습니다. 그들은 처형당하며 항변했습니다.
“난 아무 일도 안 했다.”
이에 드골은, “바로 그것이 죄다.” “우리 조국 프랑스에서 15만여 명의 프랑스인 인질이 나치에 의해 총살당했고, 75만 여명의 프랑스 노동자들이 독일 군수공장으로 강제로 끌려갔으며, 11만여 명의 프랑스인이 정치적 이유로 나치 집단수용소에 갇히고, 12만여 명은 인종차별정책에 의해 나치 수용소에 이송됐다. 피고는 이들 가운데 몇 명이 조국에 귀환했는지 알고 있는가?"
숙청위원회가 출판계의 숙청 방향을 잡으면서 언론인과 작가들이 침묵했다는 것이 왜 처형의 이유가 되는가? 에 대해 “언론인,문인은 사회 공인이기 때문이다."라고 드골은 대답하였습니다.
5. 맺는 말
저는 동인문학상의 수상에 대해 논쟁이 벌어진다는 게 사실 이해되지 않습니다. 진리와 거짓의 분별은 아주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포장을 해도 거짓은 거짓이며 위선은 위선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어느 작가는 등단 때부터 조중동 등의 친일 반민족 신문엔 투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 부산작가회의 회원 중에서도 소수이기는 하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친일 정권을 옹호하고 독재 정권의 행위를 비호하는 분들을 저는 경험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며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이유 없다”는 이들에게 “역사는 단순한 사실과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이다. 만약 우리가 그 고통을 내 것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잔인하게 반복되는, 반성의 고통이다.”라고 한 수몽 키드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국가가 애국자들에게는 상을 주고, 배반자에게는 벌을 줘야만 비로소 국민은 단결할 수 있다.”라고 강조한 드골의 말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두려운 게 유구하고도 아름다운 우리의 강토가 일본에게 다시금 유린 당하지 않을까, 선량한 후손이 임진왜란이나 일제 강점기 같은 시대가 반복되어 처참한 일을 겪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처절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이 글을 쓴 것입니다.
미천한 시인이지만, 작가회의 이사와 요산기념사업회 이사의 신분으로 어떤 언급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개인 신분이었다면 제 생각을 그저 가슴에 담아두었을지도 모를 것입니다. 저와 생각이 다른 분들이 분명 있으실 것입니다만 비루한 잡문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에 징용된 사람이 100만, 조선 내에서 동원된 사람이 450만, 군인, 군속 37만 등 합계 약 600만 명이 끌려갔다. 그중에서 군인, 군속이었던 사람은 1953년 현재 22만 명이 돌아왔지만, 약 15만 명은 행방불명 상태다. 태평양전쟁에서 전사한 사람 가운데 3분의 2는 유골을 찾을 수 없다고 하는데, 그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포함되어 있다. 징용되어 탄광이나 비행장 등에서 사망한 사람은 일본 본토에서만 적게 잡아도 6만 명이 넘는다. 후생성에는 4만에 달하는 조선인 희생자의 명부가 있다고 들었으나, 일본 정부는 ‘한일회담’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일부러 공표하지 않고 있다. (박경식,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 고즈윈, 2008, 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