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ewic368님 의견에 대해
작성일 24-06-12본문
benewic368님의 글을 읽고 의견을 남깁니다. 물론 제 의견이 부산작가회의의 '공식적인' 답변은 아닙니다. 회원으로서 몇 가지 생각을 밝히고자 게시판에 글을 쓰니 이해 바랍니다.
benewic368님의 글 요지는 민족정신이 깃든 민족문학을 지향하는 부산작가회의가 친일문학상인 동인문학상 폐지와 수상자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그간 친일 작품을 창작한 사실이 드러난 이주홍문학상 수상자가 부산작가회의 회원이었던 사실을 놓고 볼 때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행태가 아닌가, 그리고 '요산정신'을 지향하는 단체에서 '친일문학상'인 이주홍문학상과 그 주최인 부경대의 공고한 협력체제가 이어질 것이 뻔한 작금의 사태에 대해 부산작가회의의 공식적인 대응 방안이란 게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우선 동인문학상과 이주홍문학상이 똑 같은 논법으로 비판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의구심이 듭니다. 김동인은 근대문학의 토대를 닦은 상징적인 문인이지만, 그가 보였던 적극적인 친일문학과 행보는 민족문학사에 씻을 수 없는 과오요 비판받아 마땅한 행적입니다. 그래서 근래 동인문학상 폐지 운동이 의식 있는 문학 및 시민단체를 주축으로 꾸준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향파 이주홍은 김동인에 대면 인지도나 무게감이 덜하긴 하지만, 이곳 부산에서 문학의 다양한 장르 창작과 활동을 펼쳤기에 이주홍문학관이 들어서고 아울러 문학상도 생겼습니다. 요산 김정한 선생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가 일제강점기 때 여러 편 친일작품을 썼고, 해방 뒤에도 자신의 해명이나 반성이 없는 상태로 말년까지 창작활동을 이어나간 점은 그 분의 상징성에 비춰볼 때 이해하기 힘들고 아쉬울 따름입니다. 이 점 또한 간과해선 안될 문제지요.
이주홍문학상이 향파 선생의 친일문학 행위를 치장하거나 덮으려는 상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지역문인으로서 왕성한 활동과 함께 의미 있는 작품 생산에 기여한 바가 크기에 상을 제정했을 겁니다. 사실 수많은 문인들이 향파 선생이 친일작품을 생산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최근에서야 그의 친일작품이 몇몇 연구자들의 연구 덕분에 드러나게 되었지요.
부산작가회의는 요산 김정한 문학정신을 이어받고 계승하면서 민족문학의 가치와 의미를 손상하지 않고 이를 드높이는 데 의의를 두는 단체입니다. 한국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1974 발족)가 생겨날 무렵의 한국사회에 대응했던 당시 문인들의 의식은, 부산작가회의의 전신이랄 수 있는 57문학협의회(1985 발족)가 만들어질 무렵의 한국사회에 대응했던 부산 문인들의 의식과 차별성이 거의 없습니다. 한국사회의 위기와 아울러 민족문학의 위기가 팽배해진 때 민족문학 정신의 기치를 되살리려는 문인들의 각성된 의식이 뭉쳐서 조직된 단체였지요.
2020년대의 한국사회는 4~50년 전 한국작가회의와 부산작가회의가 발족될 당시의 한국사회와 다릅니다. 이 점은 길게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시리라 봅니다. 문인들의 성향 또한 예전에는 진영논리가 주축이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진영논리에 매몰된 문인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한국작가회의도, 그 지회로 되어있는 부산작가회의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인문학상 폐지와 수상자에 대한 비판은 그간 작가회의의 중요한 기치와 모순되는 현상과 행태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이주홍문학상의 경우 마땅히 친일작품을 생산한 이주홍에 대한 비판은 자유롭게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이번에 이주홍문학상 수상자가 부산작가회의 회원이었다고 해서, 그래서 부산작가회의가 회원을 수상자로 '방치'했다고 해서 그간 보여주었던 친일문학(상) 비판과 폐지를 외쳤던 '정신'과 위배된다고 직결해서 생각하는 것은 단순한 인식이 아닌가 합니다.
우선, 이주홍문학상 수상자가 적을 두고 있는 단체가 부산작가회의든 그 무엇이든 '이주홍문학상' 자체 존폐 문제를 관계자(이주홍문학재단 및 부경대학교)와 협의하는 게 순서입니다. 부산작가회의 소속이 아닌 문인이 수상했다고 해서 저희 부산작가회의의 정신과 가치를 지켰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역으로, 부산작가회의 소속 문인이 수상을 했는데 부산작가회의가 보여주었던 실천과 모순된다고 보는 시각도 문제가 없는 인식은 아닙니다. 이주홍 문학에 대한 연구에서 드러난 그의 친일문학행적은 마땅히 공유되어야 하고, 이로써 현재 부산작가회의 소속회원이든 아니든 그의 문학 전반에 걸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여기에는 문인뿐만 아니라 연구자도 포함되겠지요.
작가에게 창작의 자유는 바로 인식의 자유고 선택의 자유와 이어집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분명하지요. 올바른 인식과 선택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민족문학의 정신과 가치와 전혀 무관한 창작방향을 지니고 창작에 임하는 작가를 비난하거나 비판할 자유는 없습니다. 이주홍문학상 수상자가 비록 부산작가회의 소속회원이긴 하지만, 이들이 부산작가회의가 지향하는 방향과 목적에 스스로 위반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부산작가회의가 이들 수상자에게 비난이나 비판의 삿대질을 해서도 안 되리라 봅니다. 문제는 이주홍문학에 대한 철저한 해석과 재평가, 아울러 그의 문학행적에 대한 치밀한 논증을 거친 연후 이루어지게 되는 이주홍문학의 평가겠지요.
쓰다 보니 길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님의 문제 의식와 제기된 내용 충분히 공감합니다. 다만 수상자의 적이 부산작가회의라고 해서 이번 수상식을 두고 부산작가회의의 명확한 태도를 표명해야만 한다는 논리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라는 사실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부산작가회의도 심도 있는 논의와 숙고가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님의 귀한 의견이 아니더라도, 이번 사건을 안건에 올리면서 이사회나 총회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어질 것입니다.
예전에는 "돌격! 앞으로"가 민족문학의 창작 정신을 지배했다면, 오늘날에는 다양하면서도 구석진 곳에서 진실과 진리를 찾으려는 창작 정신이 독자들에게 다가서는 시대입니다. 민족문학 또한 편가르기나 비판을 위한 비판을 목적에 두는 민족문학을 넘어서 다양한 목소리와 다양한 의식을 보듬으며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켜내는 '보편문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민족'의 방기가 아니라 '민족'을 아우르면서 민족보다 보편적인 범주에 자신의 창작행위를 이어나간다면 이곳 부산에서도 훌륭한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이주홍문학상 자체의 존폐 문제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요산문학 정신이 절대적인 문학창작의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요산정신이나마 제대로 지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답변이 장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