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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검열'과 언더 더 씨

작성일 2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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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검열과 언더 더 씨]

정광모 소설가입니다. 저는 이 사건을 「검열」 문제로 받아들입니다.
이 사건에는 여러 쟁점이 있지만 저는 그걸 가장 중요한 문제로 본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사건을 창작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대한 침해로 보는 입장인데, 제가 던지는 의문은 이런 겁니다.

1. ‘젠더 감수성’에 충실한 작품은 좋은 작품인가? 역으로 ‘젠더 감수성’이 형편없으면 나쁜 작품인가?

2. ‘젠더 감수성’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젠더’란 누구를 말하는가? 이성애자? 양성애자? 퀴어? 트랜스젠더? 무성애자?
보통 교육을 받은 평범한 한국인? 연령별로는 어떤 계층인가? 아니면 어떤 시대정신에 충실한 특정 계층인가?

3. ‘감수성’이란 어떤 것인가? 이걸 측정할 수 있는가? 예컨대 누가 이 작품은 51%의 ‘젠더 감수성’을 지닌 작품이며
저 작품은 ‘37%의 젠더 감수성’을 지닌 작품인가로 평가할 수 있는가? 뭉뚱그려 대체로 ‘젠더 감수성’이 있다거나
대체로 ‘젠더 감수성’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 <젠더 감수성 측정 특별위원회> 같은 걸 만들어 재봐야 하는 것인가?
독자가 판단하는가? 독자도 여러 종류의, 여러 의견을 지닌 사람들로 갈라지는데 누구를 기준으로 잡아야 하는가?

4. 만약 어떤 여성 작가가 쓴 작품의 형상화, 묘사, 스토리, 구성 모두가 탁월한데 작품 중간에 ‘한국남성은 모두 한남충이며
쓰레기다’라는 취지의 글을 몇 줄 넣으면 이 작품은 죽어 마땅한 작품이 되는 건가? 역으로 어떤 남성 작가가 쓴 작품의 형상화,
묘사, 스토리, 구성 모두가 탁월한데 작품 중간에 ‘한국여성은 모두 김치녀며 쓰레기다’라는 취지의 글을
몇 줄 넘으면 이 작품은 죽어 마땅한 작품이 되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논점을 바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봅시다. 작가는 「당과 인민에 충실히 복무하는 작품」을 써야 한다고 합시다.
실제로 중국과 소련의 공식 문화 방침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방침을 어기면 추방되거나 감옥에 가거나 작품을 발표할 기회가 박탈되었습니다.

1. 여기서 ‘당’이란 도대체 뭘 말하는 걸까요? ‘당중앙위원회’를 말하는 걸까요?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충실한 당’을 말하는
 걸까요? 만약 당이 ‘모택동 파’와 ‘등소평 파’로 갈라지면 어느 쪽을 따라야 하는 건가요? ‘
당중앙’의 방침도 수시로 바뀌는데 그럼 도대체 어떤 방침에 복무해야 한다는 걸까요?

2. ‘인민’은 누구를 말하는 걸까요? 자유주의자와 대학교수는 ‘인민’에 들어가는 걸까요? 소자본 자영업자는 인민인가요?
지금 중국은 자본가도 당원으로 받아들이는데 그럼 자본가도 ‘인민’이 되는 건가요?
아니면 ‘붉은 혁명에 충실한 자본가’만 인민인가요?

3. 「당과 인민에 충실히 복무하는 작품」이란 뭘까요? 그건 누가 판단하는가요?
만약 그 판단이 틀리면 누가 책임지는가요? 소련 시대에 톨스토이가 있어 『안나 카레리나』를 썼다면
더러운 부르주아 근성 작품이라고 비난받지는 않았을까요?

제가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든 생각은 이런 종류의 것입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미적으로 편협하다는 것은 가공할 폭력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합니다.

이 사건의 본질은 군중이 일으킨 ‘집단 검열’입니다. 이 사건은 제대로 논의가 진행되었으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할 점이 많았습니다.

1) 당대 사건을 소설로 쓸 때의 형상화
2) 재난 사건을 소설로 쓸 때의 형상화와 주제의식
3) 재난 사건에서 피해자 1인칭 시점의 형상화
4) 젠더 문제
5) 문학과 애도  

만약 처음에 저자와 출판사에게 차분하게 이런 점에 관한 의견을 개진하고, 답변과 재답변, 토론이 오고 갔으면
서로가 경청하고 문학 발전을 위한 성과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SNS의 흥분한 목소리, 서울신문을 비롯한 기자의 자극적이고 소비성 기사 생산,
그에 따른 작용과 반작용이 일어나면서 격렬한 폭풍이 일었고 모두를 불태워 결국 폐허만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SNS와 서울신문 등 기사에 댓글을 단 군중 중에 120매에 달하는 이 작품을 읽은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며
소설집을 완독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저자의 다른 작품을 찾아서 읽어본 사람은 아마도 0에 가까울 것입니다.

결국 군중과 선정 기사를 생산한 서울 신문 등이 우리의 토론과 이성과 문학이 나아갈 길을 모두 망쳐버린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이 사건의 본질은 인터넷 시대 <군중이 일으킨 집단 검열>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한국 문학의 앞날에 좋지 않습니다. 모든 검열은 해악이 심각하며 특히 집단 검열은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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