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홍문학상> 폐지를 촉구하며
작성일 24-08-12본문
특정 문인을 기리는 문학상을 제정할 때는 그 문인의 작가로서의 정신과 문학적 성취를 기려 제정하는 게 기본이다. 예를 들어 김동인의 경우 몇 가지 문학적 선구자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작가적 정신 관점에서 보면 그는 기려야 할 인물이 아니고 기억해야 할 대상이다. 알려진 대로 그는 국가대표급 친일파로 노골적인 친일 행위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김동인이 펼치고자 했던 근대 문예 선구자로서의 모색도 실패한 인생에 대한 보상심리에서 시작된 문학의 근대 미에 대한 개념 착오와 그러한 선구자적 강박이 빚어낸 비극의 경로였을 뿐이다* 그는 학병, 지원병, 징병 그리고 징용을 전국적 차원에서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산문을 통하여 내선일체와 황민화를 주장하고 침략전쟁과 ‘대동아공영권’을 합리화했으며 문학인의 문필보국을 주도했고 국책 문학으로서의 <국민문학>을 선전, 선동한 장본인이다. 그야말로 친일의 전형적인 모습은 다 보여줬다고 하겠다.
위안부 할머니를 끔찍하게 아꼈던 작가 김모가 있다. 그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아가 보듬고 위로하며 함께 눈물을 흘렸고 구술을 받아 기록에 남기며 작품화했고 다국적 세미나 때는 발제자로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그의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자세는 너무나 진지해서 작가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일 정도였다. 그런 그가 <동인문학상> 후보에 올랐을 때 많은 이가 놀랐다.
동료 문인들은 걱정을 많이 했고 몇몇은 말렸다. 다른 이는 몰라도 당신은 그 상과는 거리를 두는 게 맞지 않느냐고 진심 어린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듬해 결국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고 말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아가 흘린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부산문학의 정신적 지주 김정한 선생을 기리는 <요산문학상>까지 받았다. 한 시대에 달라도 너무나 다른 삶을 산 두 사람을 기리는 상을 모두 수상했다는 것에 대해 그 작가의 역사의식과 정신세계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학상은 고귀하니 어떤 상도 사양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비정상적 사고와 배금주의의 극치를 본다.
작년 <동인문학상> 수상자도 마찬가지다. <요산문학상>도 수상했고 요산기념사업회에 몸도 담고 있으면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불행하게도 보고싶지 않은 데자뷰가 되어 탈기한다. 언제까지 이런 비극이 반복되어야 할까.
<이주홍 문학상>도 예외일 수 없다. 그가 친일한 것은 자명하다. 그가 부산에서 어떤 문학적 선구자로 공을 세웠는지는 몰라도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황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자고 외치고 다닌 김동인과 오십보 백보다. 뉴욕타임즈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신문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도 신문은 만화 만평을 실어 왔다. 촌철살인의 비판과 해학이 주는 영향이 큰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주홍의 친일행위는 그 깊이가 결코 얕지 않고 더 노골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인 오장환은 절친 서정주가 ‘오장 마스이 송가’ 등 황민화 시를 쓰자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낙엽을 태우며’로 잘 알려진 수필가 피천득은 일제강점기 동안 절필로 일제에 항거했다. 안면상 겉으로는 축하하지만 속으로만 비판을 가하는 온정주의도 이런 상황을 반복하게 한다. 나치의 2인자 괴벨스도 유려하고 논리적인 문장가였다. 그의 역량은 선동선전문에서 탁월했다. 그러나 종전 후 끝까지 변명으로 일관한다. 이들의 공통적인 점은 결코 반성하지 않고 변명하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이주홍도 그런 부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 시대를 살면서 정체성 오판, 오류에 대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일제가 이렇게 빨리 망할 줄 몰랐다는 서정주의 변명과 그 침묵은 동일 선상에 둬야 하지 않을까.
2001년 8월 4일 친일 문인 서정주를 기리는 <미당문학상>을 제정하겠다고 중앙일보가 발표했을 때 한국작가회의는 물론 역사시민단체가 들고 일어났다. 그러나 대기업그룹의 재정적 지원을 받은 중앙일보는 <미당문학상>을 강행한다. 이듬해 한국작가회의 임원이 심사위원을 맡는 등 속수무책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뜻있는 문인들이 친일 문인을 기리는 상을 더 이상 방기할 수 없다고 힘을 모아 비판 세미나는 물론 폐지 촉구 집회에 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중앙 언론사에서 운영하는 바람에 갈수록 권위를 더해 가던, 서정주를 기리던 중앙일보의 <미당문학상>, 김기진을 기리던 한국일보의 <팔봉비평문학상>은 사고(社告)도 없이 사라졌다. 서정주와 김기진이 친일은 물론 독재자 찬양까지 한 점은 그들의 정신세계를 잘 보여준다 하겠다.
2017년 한국작가회의는 이사회에서 치열한 논쟁 끝에 친일 문인을 기리는 상은 받지 않기로 하는 권고문을 채택했다. 친일 문인을 기리는 상을 수상했을 경우 제명까지 거론되었으나 기수상자의 입장을 고려하여 권고문으로 완화했다.
이런 비생산적이고 몰역사적 행위가 계속된다면 우리 문단이 노벨문학상은커녕 우리 후대의 세대에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당장은 고통이 있더라도 정의롭지 못한 부분은 도려내야 한다. 화살을 맞았을 때 화살을 뽑아내고 약을 발라야지 화살을 잘라내고 반창고만 바른다면 그게 제대로 된 치유가 될까. 지금 당장 고통이 있더라도 극복하지 않으면 우리 작가들의 온전한 정신 세계는 요원해질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노골적인 친일 행위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대위변제, 후쿠시마 오염수 국민 혈세로 안전성 홍보, 횡설수설하는 한미일 군사동맹, 뉴라이트 계열의 친일사관을 가진 자들의 독립기념관장 임명 등 정상적인 국가라면 상상할 수조차 없는 매국 행위가 버젓이 진행되고 있는 이 시점에 우리 작가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대해 진정으로 고민할 때가 아닌가 되돌아본다.
* 한명환. <근대 강박과 괴물의 주인공들- 김동인의 문학과 정체성>, 2023년 11월_친일 문인을 기리는 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_세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