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부산작가상 보도자료
작성일 23-04-27본문
제21회 부산작가상 심사 결과 보도자료입니다.
보도자료 (2021. 12.)
‘2021년 제21회 부산작가상’ 수상자 선정
∙시 부문: 김미령, <우리가 동시에 여기 있다는 소문>
∙소설 부문: 임성용, <기록자들>
∙평론 부문: 권유리야, <여자와 총, 그리고 걸 크러쉬>
□ 부산작가회의는 ‘부산 작가의 문학적 성과를 드높인 작가들을 격려, 시상함을 목적으로’ 2001년부터 매년 ‘부산작가상’을 시행해 오고 있습니다.
□ 2020년 10월 1일부터 2021년 9월 30일까지 출간된 부산 문인들의 시집과 소설집, 평론 작품집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하여, 시 부문에 김미령 시인의 <우리가 동시에 여기 있다는 소문>, 소설 부문에 임성용 소설가의 <기록자들>, 그리고 평론 부문에 권유리야 문학평론가의 <여자와 총, 그리고 걸 크러쉬>를 ‘2021년 제21회 부산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 시상식 일시와 장소
∙ 2021년 12월 15일(수) 오후 6시, 부산남포문고 문화홀 ‘冊138’
□ 김미령 시인 약력
∙2005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파도의 새로운 양상????(민음사, 2017)
□ 임성용 소설가 약력
∙2018 ≪부산일보≫ 신춘문예 「맹순이 바당」으로 등단
∙2018~2019 부산작가회의 사무국장 역임
∙2020 제12회 현진건문학상 「지하생활자」 추천작 선정
□ 권유리야 문학평론가 약력
∙ 2004 ≪작가세계≫ 평론 부문 신인상 수상
∙ 2006 <부산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 2015~현재 부산외국어대학교 만오교양대학교 교수
∙ 2020 동북아시아문화학회 우수논문상 수상.
∙ 출간집 ????야곱의 팥죽 한 그릇????(평론집, 새미, 2008), ????이문열 소설과 이데올로기????(평론집, 국학자료원, 2009), ????문화, 백일몽, 대증요법????(평론집, 새미, 2011), ????인간 신해철과 넥스트시티????(공저, 문화다북스, 2015), ????차이의 해석과 문화적 시선????(공저, 한국문화사, 2017)
□ 심사평
∙ 시 부문
이번 심사대상이 된 아홉 권의 시집을 받으면서 큰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우선 부산작가회의 시단의 성장이 저절로 감지되었다. 모두가 어떤 수준에 도달한 느낌을 주었고 부산작가회의 현주소를 확실하게 드러내주었다. 다 읽을 만하고 자부심으로 가득한 작품집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심각한 고뇌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충분히 검토하고자 촘촘히 읽으려 노력했다.
두 심사위원은 모든 작품집에 세심히 접근한 후 각각 1, 2, 3위를 매긴 작품집을 들고 회동하기로 했다. 두 위원 모두 1위로 선택한 시집이 『우리가 동시에 여기 있다는 소문』이어서, 김미령 시인을 수상자로 아주 흔쾌하게 선정할 수 있었다. 김미령의 두 번째 시집인 『우리가 동시에 여기 있다는 소문』은 사물과 사유, 그리고 언어가 진지한 새로움을 형성하고 있었다. 사물과 현상의 이면들이 첩첩이 겹을 이루고 있어, 무수한 경계들의 팽창이 손에 닿을 듯 느껴지는 게 큰 강점이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끝까지 사물 또는 상황의 현상을 따라가는 깊이의 미세함, 그 감성과 인식이 지속적으로 여울져 시에 대한 시인의 의지가 그대로 읽혔다. 감상적인 부분이 배제된 깔끔한 상상력들이 일상적인 시간과 공간을 단단하게 뒷받침하는 것도 매력이었다.
다른 작품들도 장점이 많아 아까웠다. 대체적으로 현실의 틈을 디딘 삶의 갈피들이 진솔하게 다가와 감동되는 시편들이 많았다. 상상력에 도전적인 부분도 보였고, 생명의 얼룩을 따라가는, 과도하지 않는 충실함과 정직함이 잘 읽혔다. 이러한 문학적 성실함이 부산작가회의의 시단을 형성하고 있음이 믿어져 든든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평이함 때문에 더 깊은 심연으로 내려가야 할 지점도 더러 눈에 띈 것도 사실이다.
모든 시는 읽는 자에게나 쓰는 자에게나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이며 삶을 이해하는 방정식이다. 또한 유한의 존재가 무한에게 던지는 질문이며 응답의 방식이기도 하다. 시편들의 무수한 행간에서 다채로운 질문을 새기는 기회였다. 아홉 작가를 새롭게 만날 수 있게 한 부산작가회의에 감사드리며 수상자에게 축하를 표한다. (김수우)
우리는(김수우, 권정일) 작가상 후보 작품집들을 모두 읽고 그중 세 권의 시집을 가려 중앙동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꼼꼼히 읽었고 오래 머물렀던 시집들. 후보 작품집 모두 치열한 시 정신과 언어를 부리는 솜씨가 남달랐음을 고백한다. 각자의 시집 속에 거주하는 고통, 고민, 생명의식 등을 꺼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세 권의 시집은 김미령 시인의 『우리가 동시에 여기 있다는 소문』과 정안나 시인의 『명랑을 오래 사귄 오늘은』 과 이지윤 시인의 『나는 기우뚱』 이었다. 우리는 쉽게 의견이 일치했다. 결과적으로 김미령 시인의 『우리가 동시에 여기 있다는 소문』을 올해의 작가상으로 선정하는 데 이견이 없었다. 우리의 의견을 믿었고 오래 뜸 들이지 않았다. 같은 시선으로 수상작을 바라보았고 놀랐고 안도했다.
수상작 『우리가 동시에 여기 있다는 소문』은 단단하다. 세계와 사물에 대한 낯선 시선과 일상에 매몰되지 않는 집중력이 상상력과 결합하여 수위 높은 미학을 창출한다. 일상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확장되는 시적 공간들, 발화의 거침없음과 화자와 쉽게 화해하지 않는 창의적인 발상, 언어들의 리듬, 세계를 바라보는 문제의식이 자연스럽게 깔려있어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시인은 비논리적으로 연민하고 논리적으로 분노해야 할 것이다. 감정을 느끼지 않는 데 중독되지 않기를.(권정일)
∙ 소설 부문
제21회 부산작가상 후보에 오른 4권의 창작집은 오미자처럼 여러 가지 맛이 섞여 단편소설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게다가 이 어려운 시기를 서성대지 않고 오롯이 작업에 몰두한 작가들의 결과물이어서 더 없이 귀했다. 즐거운 심사독회 중에 타 문학상 수상 작가로 선정된 후보 작가의 작품집을 빼고 나자, 언뜻 심사가 만만해보였다. 하지만 막상 한 권의 책을 낙점해야하는 순간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가족과 공동체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아픔을 통해서 그려내고 있는 ‘봄밤을...’ 등은 소설 속에서 사용한 소도구들을 주제로 밀고 가는 솜씨며 섬세하고 서정적인 문장 또한 아름다웠다. 비슷한 구성이나 인물에서 오는 평면성은 다소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인간을 ‘먹고 싸고 차지하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는 실패한 생물’이고 ‘이 행성에서 가장 해로운 생명체가 인간’이란 말 따위를 능청스럽게 툭툭 내뱉는 임성용의 <기록자들>은 독특한 상상력과 날것의 발칙한 문장으로 독자를 긴장시킨다. 지하생활자로 대별되는 힘들게 살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야만적인 지배 질서 속에서 어떻게 하면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이 소설가에게서 한국 소설의 전통적 가치를 계승할 수 있는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 세밀한 정서보다 다소 거칠지만 선이 굵은 서사나 주제에 손을 들어줬다. (박명호, 정우련)
∙ 평론 부문
‘평론’이 지닌 ‘기묘하고도 성가신’ 문학 장르의 특성 때문에 평론이라는 이름도, 그리고 평론가라는 직함 자체가 주는 왠지 이상야릇하면서도 무거운 느낌도 ‘밀실에서 속삭이는 진중한 담화’처럼 어딘가 모르게 제3구역의 스산한 공기를 제공하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스산한 공기’야말로 사실 비평의 본질일 것이다. 작품에 대한 환기와 반성을 작가 스스로가 아니라 비평가의 발화로써 문학 장(場)에 넌지시 던지는 일이 비평의 기능이자 숙명이라면 비평은, 또한 비평가는 한 눈은 정면을 보면서 다른 한 눈은 짐짓 딴청부리듯 사각의 모서리를 훑어내려야 한다.
작품의 형식이 말해주는 외연의 진실이 결코 문학 본령을 귀띔하지는 않는다. 아니 문학에 본령이 있을까. 삶에서 길어낸 온갖 정신과 감정의 찌끼들을 정연한 언어논리로 풀어내는 중에, 소스라치듯 존재의 비밀을 엿보고 엿듣게 되는 ‘존재대상’을 환기하는 모든 과정이 문학세계에 수렴된다. 이 과정에서 문학비평은 일종의 신호수 노릇을 할 터이다. 예감과 징후를 아우르면서 해석과 평가를 행하는 비평이 그래서 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다.
권유리야 평론집 『여자와 총, 그리고 걸크러쉬』(포엠포엠, 2021)는 문학에서, 문학을 포함한 문화로 눈길을 넓힌 비평가의 최근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저서다. 문화비평서라 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문학비평에 침투하기 시작한 문화비평 요소들은, 달라진 세태와 풍속을 채찍질 삼아 담론의 영역을 새롭고 첨예하게 헤집었다. 이런 중에 전통적인 문학독자는 대중, 혹은 다중으로 상징되는 또 하나의 문화소비자로 재설정되었다. 문학에서 문화로 이행하는 과정은 비평가에게 기쁨이나 환희를 주기보다는 오히려 쓰라림과 절망 한복판에서 이 세계를 조망하는 의지를 추켜세울 것이다.
권유리야의 비평 또한 그러한 터널 한복판에서, 혹은 끝에서 흘러나왔다고 본다. 그는 이 시대의 문화소비자들이 열광하거나 관심을 두는 매체와 스타, 그리고 사회현상을 놓치지 않고 모니터링하는 모니터다. 그러므로 그의 비평을 읽으면 우리 사회의 그늘과 표정이 보인다. 외면하고 싶은 영역들과 거부하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인 내상(內傷)이 요란한 행위와 말들로 섞여 현상하는 가운데 놓치고 있는 진실을 찾으려 하는 비평가의 탐구욕이 이번 평론집에 그득하다.
새침 떼는 듯 직핍해 들어가는 말의 추진력과, 거두절미하는 듯 조곤조곤 담론의 들머리를 안내하는 비평가의 ‘말재간’도 평론집을 읽는 재미를 돋운다. 그동안 부산 비평에 ‘정통비평’의 흐름이 묵직하게 자리 잡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면, 권유리야가 지향하는 비평은 그간 ‘엄숙하고 냉정한’ 이곳 비평의 온도를 조금은 말랑하게, 그리고 조금은 달콤하게 조절하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동료로서 축하의 손길을 내민다. (정훈)
□ 수상 소감
∙ 시 부문 : 김미령
실감이라는 것은 항상 늦게 도착하는 것 같습니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어떤 감정이 제게 찾아오는 방식은 늘 그랬던 것 같아요. 뭉툭한 뭔가가 등을 툭 치고 지나갔는데 한참 뒤에야 “어, 좀 전에 뭐가 지나갔는데 그게 뭐였더라?”하고요. 가까운 사람의 부고를 받을 때도 그랬고 등단 소식을 들을 때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수상 소식을 받았을 때도 저는 잠시 멍했던 것 같습니다. “어, 이게 뭐지? 내가 뭘 하긴 했었나?” 하고요.
슬픔이나 기쁨이 조금씩 쌓여서 그것이 어떤 무게로 가슴을 압박해오거나 벅차오를 때에야 비로소 감지되는 이유가 제가 공감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닌가 생각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감정표현도 극히 단순하고 서툰 편이지요. 그런 성격이 시에도 드러나는데요.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냉담한 시들을 써 왔던 이유가 그래서인가 싶어요.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이번 시집에서는 달라지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다정다감한 시를 썼다는 것은 아니지만 저를 둘러싸고 있던 울타리를 걷어내고 싶었다고 할까요. ‘나’와의 거리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제가 저를 무화시켜가는 과정에서 발견한 외부의 풍경, 그 속에서 관찰한 크고 작은 움직임들을 멀리서 관조하면서 스케치하듯이 담담하게 그려나가려고 했습니다. 외부를 향해 지속적으로 자아를 개방시켜보고자 한 제 의도가 이번 시집에서 읽혀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부산작가상은 이러한 제 노력에 대한 결실인 것 같아 스스로도 보람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 시집을 긍정적으로 읽어주시고 저의 ‘쓰는 삶’이 계속될 수 있도록 불쏘시개를 던져주신 심사위원께도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모쪼록 모두 건강하게 어려운 시기를 잘 건너서 일상을 빨리 회복하고 읽고 쓰는 일과 그것을 다함께 나누는 일도 좀 더 원활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소설 부문 : 임성용
자주 길을 잃는다. 그럴 때는 묻는다.
너는 어디에서 왔지?
글쎄, 자궁. 그 이전에 미네랄. 그 이전에 캄브리아기. 그 이전에 햇빛, 열, 가스, 빅뱅. 그 이전은 상상되지 않는군. 그냥 난 빅뱅으로부터 왔다고 하지 뭐. 그런데, 그렇게 묻는 당신은 어디에서 왔지?
나? 난 좁고 길게 꼬인 네 머릿속에서 왔지. 길을 잃을 수밖에.
라고 대답이 돌아오면, 생활의 문단이 바뀐다.
그럴 때는 알람을 맞추고 달린다. 아침 여섯 시와 오후 여섯 시의 알람 사이에서, 오른편 왼편 팔을 흔들며 아파트를 생각할 때도 있다. 튼튼하고 안전하게 택배를 받을 수 있는, 흔해 빠졌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그런 환상 속을 달리다 보면 환상적 현실과 현실적 환상 속에서, 나는 철근이 되기도 하고 콘크리트가 되기도 한다.
그럴 때는 그림자의 온도, 파스칼이 말 한 힘없는 정의와 정의 없는 힘, 가족, 사랑, 습관 등을 끄적거린다.
가끔은 길 가 품 넓은 느티나무 그늘에 쉬거나, 그 아래 감춰진 뿌리에 마음을 기댄다. 지금 내가 여기에, 이 모양으로 있을 수 있는 것은 그 그늘들 덕이 크다. 감사한 일이다.
농구가 도움이 된다. 무거운 몸으로 쿵쿵 뛰고 낮게 점프한다. 뒷걸음질 치며 부딪고, 가끔 스틸과 블락을 한다. ‘선생님, 농구가 하고 싶어요.’라며 울던 정대만을 이해하고, ‘당신의 전성기는 언제였나요? 저는 지금입니다.’라고 말하는 강백호*의 말에 여전히 피가 끓어 오른다.
검붉은 근육으로 영원처럼 허공을 떠 가서 덩크를 내리꽂는 마이클 조던처럼, 앞으로도 허공을 향해 자판을 두드리겠다. 그저 애쓸 뿐이다.
미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제 편이 되어주는 6남매와 아내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멋진 느티나무로 살다 가신 정태규 선생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슬램덩크”라는 만화책의 주인공
∙ 평론 부문 : 권유리야
한때는 비평가가 칼을 쥔 자라고 생각하였다. 지금은 비평가가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맨몸의 지렁이로 여겨진다. 메마른 대지를 견디지 못해 습한 땅 속에서 몸을 적시지만, 비가 와 습기가 심하면 또 아스팔트에 올라와 따가운 햇살에 똬리를 튼다. 지렁이는 한 번도 주인인 적이 없다.
비평가는 늘 불행과 다투는 자다. 매일 아침 신을 단념했다가, 저녁에는 다시 신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여자와 총, 그리고 걸크러쉬????에서 나는 우리에게서 나가는 시간이 아닌,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간을 눈여겨 보았다. 숟가락과 젓가락에서 신성을 발견하려는 좌절 섞인 설렘, 흥분 있는 긴장감이 이 책 안에 있다. 천사는 천사의 옷을 입고 오지 않는다. 아브라함에게 온 천사가 행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듯, 나는 리모콘 속에서 황홀한 비전을 경험했다. 그래서 나의 작업에는 성스러운 데에서 세속적인 것을 쫓아내는 대신, 세속적인 데에서 성스러운 것을 되찾는 반복이 있다.
경이로움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상실이다. 이제는 비평이란 무엇인가’보다 ‘무엇이 비평인가’가 더 중요하다. 언저리로 밀어낸 작은 부분들에서 경이로움은 충만하다. ‘비평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 그 시간에 이미 우리 삶 속에 비평이 진행중이어야 하는 것이다.
매번 불행과 다투는 지렁이처럼, 매번 노심초사하는 이방인처럼 늘 경계에 서 있으려 한다.
비평에 대해 돌아볼 시간을 주신 심사위원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