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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작가회의 시평 에세이5 - 훗날, 당신 돌아왔을 때

작성일 23-04-27

본문

훗날, 당신 돌아왔을 때
                               배옥주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누군가, 인사동 합동 분향소 옆으로 읊조리며 스쳐갔다. 분향소에는 겹겹 흰 국화들이 서럽도록 꼿꼿하게 누워있었다. 고개를 숙인 내내, 눈물 같은 무수한 생각들이 국화를 든 손목을 타고 심장으로 흘러내렸다. 어린 영혼들을 위로하는 향냄새가 진혼곡처럼 피어올랐다. 희디흰 국화가 ‘꽃다운’이라는 말조차도 꺼내지 못 하게 입을 틀어막는 듯 무겁고 아팠다. 무수한 물음표로 떠다니는 원혼들. 나의 그리고 당신의, 우리의 아들이고 딸이고 누이이고 아우인 그들을 어떻게 어디로 보낼 수 있을 것인가? 묵념을 끝내고 돌아서는 등 뒤로 날아든 비토의 화살이 심장을 관통하는 것 같았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핼러윈 축제가 열린 이태원 압사사고로 156명의 어린 생명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어린 생명들이 아직 사경을 헤매고 있다.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한 압사사고에서 성지순례를 하던 1426명이 목숨을 잃었고, 불과 한달 전 인도네시아 축구경기장에서는 난입관중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130여명의 압사사고가 일어났다. 우리는 일련의 사고를 향해 미개한 후진국형 사고라며 손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이태원 압사사고를 무슨 말로 변명할 것인가? 손가락질 당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지금에 와서 사후약방문처럼 경찰인력을 더 배치할 걸, 질서를 더 잘 지킬 걸, 껄껄대는 껄무새가 되어 비싼 공부했다고 위무 받기엔 희생의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헌법 제34조 6항이다. 지금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은 국가로부터 생명을 보호받아야할 사회적 기본권 보장 앞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고위험군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장난으로 질서를 떠밀었고, 주검을 방관한 광란의 이기심은 멈추지 않았고, 신고를 무시한 직무는 지켜야할 자리를 유기했다. 책임을 따져 묻는 공방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누구에게도 묻지 못 한 채 떠넘기는 책임론은 자신에게서 터질세라 서로에게 밀어내기 바쁜 폭탄 돌리기가 되었다.
  이태원 압사사고에 대해 애도기간과 재난특별구역이 선포되었고, 오늘은 이태원 압사사고 희생자의 국가애도가 끝나는 날이다. 위로금 이천만 원과 장례식 비용 천오백만 원을 준다는 자막이 모니터 하단에서 무심하게 흘러간다. 저 목숨값이 위로해줄 수 있는 소용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 와서 참사 앞에 자세를 낮춘 고위 책임자들. 그들이 숙인 고개 앞에서 진심은 대답을 생략한다는 어느 시인의 말을 떠올린다. 우리는 대답을 생략해도 될 만한 진심을 정녕 들을 수 있는 걸까? 이토록 극심한 상처를 딛고 일어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인가.
   ‘아마데우스’를 본 이후, 모차르트의 미완성 레퀴엠 라크리모사(Lacrimosa)를 다시 꺼내 듣는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길을 비추던 진혼곡이 이태원 희생자들의 생전 미소를 감싸 안고 통곡하는 것 같다. 레퀴엠 ‘눈물의 날’이 부디 이태원 희생자들의 영혼을 어루만져주기를!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다 떠오르는 시를 주절주절 펼쳐 놓는다. 눈을 깜빡이면 다시 돌아올까? 나에게도 눈 질끈 감는 새 버릇이 생길 것만 같다.

추억하는 건 늙지 않기 위해서죠
훗날 당신 돌아 왔을 때
바로 알아 볼 수 있도록
그 찰나를 위해 내 여생을 바치고 있죠
바라보는 것만으로
당신 가둘 수 있었던 내 눈
이제 깜박여야만 당신이 와요
추억은 고통스러운 문장이지만
주인공이 사라지는 건
비극보다 더 비극적이죠
당신 모르겠군요
하루에도 수백 번
눈 질끈 감는 새버릇을요*


*차주일 「새 버릇」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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