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작가회의 시평 에세이4 - 한글은 가장 위대한 유산입니다
작성일 03-04-27본문
한글은 가장 위대한 유산입니다
김수우
대한민국 5천 년 역사에서 우리가 물려받은 것 중 가장 위대한 유산이 한글입니다. 이 한글에 대한 우리의 자긍심과 애정은 그야말로 높고 깊고 넓습니다. 우리의 뿌리와 정체성, 고유한 정신과 문화가 고스란히 한글에 담겨 있습니다.
한글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우리의 영혼입니다. 국제화와 영어상용도시는 같은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아름다운 한글을 더, 제대로 가꾸는 것이 국제화의 지름길입니다. 영어를 잘 하는 것이 국제화가 아닙니다. 지역성과 고유성이라는 매력을 살려 세계에 내놓은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것을 잘 알고, 자신의 존엄과 그 보편성을 제대로 알리는 게 국제화 작업입니다. 그때 세계가 부산을 인정합니다.
지금 우리의 한류 문화가 얼마나 눈부시게 팽창하고 있습니까. 우리 고유의 뿌리가 얼마나 당당한 것인지 이제 모두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한글이라는 바탕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만의 문자, 우리만의 말, 얼마나 존귀합니까.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우리 스스로를 긍정하게 된 오늘에는 한글이라는 위대한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 앞자리에, 세계화의 가장 앞자리에 한글이 있습니다. 언어는 그 나라, 그 지역의 자연과 생명성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한글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에 뿌리내린 가장 구체적인 혼입니다. 우리 선배들이 이 한글을 지키고 가꾸려 얼마나 노력했습니까. 가장 평등하고 가장 우주적인 보편성을 품은, 그야말로 ‘홍익인간’을 그대로 실현하는 우리 한글입니다. 때문에 오늘날도 우리 모두에게 가장 큰 미래이며 잠재력입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식물생태학자인 로빈 월 키머러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면서 쓴 『향모를 땋으며』에는 인디언의 말을 더 이상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인들과 함께 잃어버린 단어를 공부하는 인디언 모임들이 나옵니다. 잊혀진 단어들을 보석처럼 캐어냅니다. 하나하나의 단어가 그 자체로 생명입니다. 다음은 나이지리아의 시인 하리 가루바의 시입니다.
알파벳으로 치장한, 의미가 혀의 집으로 들어와
주술(呪術)과 영가(靈歌)의 시대를 영면에 들게 하면 //
혀의 신들은 언어의 규칙에 자리를 양보한다
영원히 세상을 뒤덮을 알파벳의 휘장
하지만…
주술과 영가의 시대를 매장한
알파벳의 껍질을 깨고 활기를 불어넣게 하는 혀의 첫 마디는 무엇인가? //
우리는 언어의 휘장을 찢고 다시
풍요로운 주술과 영가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 「혀의 집에서」 부분
위 시처럼 식민지를 겪으며 알파벳에 지배당한 아프리카의 많은 작가들은 자신만의 언어를 회복하기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사유를 길들이는 알파벳이 아닌 입속의 혀로 정령을 일깨우는 말을 기억하려는 것입니다. 영성적이고 대자연적인 본래의 뿌리를 찾아가려는 것입니다. 알파벳으로는 결코 아프리카 고유의 정신을 표현할 수 없으며, 알파벳이 자신의 역사를 얼마나 왜곡시켰는지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어의 회복을 꿈꿉니다.
이처럼 그 나라의 언어는 우주적이며 생명적이고 대자연을 품은 가치입니다. 역사 그 자체인 언어는 민족의 몸짓에서 나왔고, 그 몸짓은 모든 정신 모든 관계를 향한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이어집니다. 한글은 한반도의 대자연에서, 그리고 민중의 몸짓이 있는 삶의 현장에서 나왔습니다. 언어는 탯줄을 끊기 전부터, 옹알이를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안에서 형성된 어떤 부름 같은 것입니다. 인식 이전에 감지하는 대지의 울림과 떨림, 그것은 태어나는 순간에 부여받는 근원적인 선물입니다.
영어상용도시를 기획한다는 것은 자신의 소중한 영혼을 파는 일입니다. 부산이 진정한 인문주의가 아닌, 극단적인 물질주의· 소비주의· 기능주의로 나가자는 말입니다. 코로나 엔데믹이라는 당면한 현실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치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술적 기능적 사고가 아니라 자연적 생태적 사고를 요청합니다. 서구화를 따라가는 것은 21세기 전 지구적 위기에서 성찰하게 되는 회복과 치유의 담론과 훨씬 멀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일은 성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합니다. 도시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도 성과가 아니라 과정이어야 합니다. 모든 문화와 역사에는 방향이 매우 중요하고, 한글은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매우 중요한 지표입니다. 우리에게 빛나는 미래적인 자산이 된 말과 글, 그 안에 고스란히 적층된 우리의 삶과 꿈을 기억합니다. 어떻게 지켜온 한글입니까. 우리의 자부심을 추락시키는, 우리의 존엄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영어상용도시’, 이 기획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