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문학협의회 창립 40주년 기념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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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5-05-09본문
‘신세계’ 촬영지 화국반점, 알고 보면 부산 문학계 민주화운동의 현장
부산작가회의 전신 ‘5·7문학회’, 40년전 출범한 식당서 기념 행사
국제신문 조봉권 선임기자 bgjoe@kookje.co.kr
부산일보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부산시 중구 백산길3. 화상이 주인인 이 중국요리집은 영화 ‘신세계’ ‘범죄와의 전쟁’ ‘공조’ 등 여러 영화에 등장하며, 지금은 원도심의 관광지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곳은 영화 배경으로 알려지기 이전 부산 문학사에 있어 굉장히 의미 있는 장소이다. 근처에 출판사와 인쇄 골목이 형성돼 문인들의 발걸음이 잦았고, 작가들 모임의 단골 장소가 됐다. 바로 여기서 1985년 5월 7일 부산 진보 문학의 불씨가 타올랐다. 요산 김정한 선생을 중심으로 28명의 부산 문인이 폭압적인 5공화국 군사 정권에 맞서 역사와 현실을 직시하는 참문학을 실천하겠다며 ‘5·7 문학협의회’를 출범시켰다.
당시 강영환 작가가 쓴 ‘5·7 문학협의회’ 출범 취지문에선 단체의 목적이 뚜렷이 드러난다. 취지문에선 ‘5·7 문학협의회는 민중의 삶, 즉 커뮤니티를 간직한 따뜻한 대중적 삶과 형태, 그리고 시대 요청에 대한 문학인의 사명감을 자각하고, 현실에 밀착된 삶의 목소리를 문학 형태로 형상화할 것이며, 또한 역사적 인물의 재조명과 민중 시가의 발굴과 기록 및 평가 작업을 통해 우리 삶을 재확인할 것이다. 이 시대의 소외된 삶과 뜨겁게 만나서 문학을 더욱 적극적으로 저변화해 나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엄혹했던 시절, 부산에서 탄생한 5·7 문학협의회는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고, 회원들은 고초를 겪기도 했다. 단체의 무크지였던 <토박이 2집>은 정부에 의해 판매 금지를 당했고, 당시 학교에 교사로 재직 중이던 회원은 교장으로부터 탈퇴, 활동 금지 등을 여러 차례 회유 받았다. 모임이 있는 날에는 형사들이 정보 수집을 하기 위해 현장을 지켰고, 전경 버스 여러 대가 출동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도 참문학에 대한 실 의지는 꺾이지 않았고 이후 <문학과 실천> <문학과 현실> 등 사회에 대한 문학적 목소리를 담은 문학지가 꾸준히 발간되며 현재 부산작가회의 계간지 <작가와 사회>의 산파 역할을 했다. 5·7 문학협의회는 1988년 부산민족문학인협의회로 개편됐다가 1996년 부산민족문학작가회의가 되었고 2007년 부산작가회의로 명칭을 개정해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일 부산작가회의는 5·7 문학협의회 창립 40주년을 맞아 첫 시작이었던 부산 중구 중국요리집에 모여 기념식을 열었다. 28명의 회원 중 요산 선생을 비롯해 절반이 세상을 떠났지만, 남은 회원들은 세월의 풍파에도 여전히 치열하게 참문학의 길을 가고 있다. 조갑상 소설가, 신진 시인, 류명선 시인, 하창수 문학평론가, 구모룡 문학평론가들이 5·7 문학협의회 출범 당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했고, 후배 작가가 출범 취지문을 낭독하며 40년을 이어온 강인한 정신과 진심이 느껴졌다.
조갑상 소설가는 “문학은 시대 상황과 관련이 많다. 12월 3일 이후 문인을 비롯해 국민들은 다시 광장에 섰다. 지금의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 문인들은 더 치열하게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요아킴 부산작가회의 회장은 부산작가회의 회원이 300명 가까이 되며 각자 개성적 결이 다양해지고 사회 전반적으로 문학에 대한 관심이 줄고 있다는 안타까운 상황에 대한 고민도 털어놓았다. 김 회장은 “힘든 시대 요산의 정신에서 다시 해답을 찾으려 한다. ‘사람답게 살아가라.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불의에 타협한다든가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이 갈 길이 아니다’라는 요산 선생의 말을 생각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