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수상자

All Menu

지역문학의 힘으로 민족과 세계를 봅니다.

역대수상자

제23회 부산작가상 수상자(2023년)

페이지 정보

수상작품
이정모, 『백 년의 내간체』(천년의 시작)
심사위원명
김 참, 박대현
등록일
24-02-12

본문

img_682bd45ebec12.jpg

 □ 이정모 시인 약력 

2007년 심상으로 등단시집으로 허공의 신발』 『백 년의 내간체』 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아르코 발표 지원금 수혜 


 

□ 심사평 

 

∙ 시 부문 

 

본 심사위원들은 후보작 중에서 시집 세 권을 주목했다이정모의 백년의 내간체이환의 아무에게도 해독되지 않는 문장임헤라의 화요일 자정에 걸을 수 있는 여자는 모두 나오세요가 수상에 근접했다는 판단이었다세 권의 시집 중 수상작을 선정해야 하는 일은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이환의 시집은 간결하고 정제된 언어로 부조리한 현실의 의표를 꿰뚫는 첨예한 시 정신을 확보하고 있으며임헤라의 시집은 낯설고도 자유로운 상상력과 활달한 언어로 환상적 이미지를 조형해내는 시적 성취를 보여주었으며이정모 시인은 근래에 쉽게 찾아보기 힘든 드높은 서정과 정신의 세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이정모 시인은 지난 10월에 타계하였으나시가 존재와 부재를 모두 끌어안는 영혼의 형식이라는 점에서부재를 이유로 수상 후보군에서 배제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었다시인은 현실 속에서 부재할지라도 시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심사위원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세 시집의 의미와 가치를 면밀하게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임헤라의 화요일 자정에 걸을 수 있는 여자는 모두 나오세요는 시어의 정제성과 음악성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모던한 이미지의 조형술 역시 미학적 완결성의 관점에서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였다무엇보다 세계의 습속을 벗겨내는 환상적 이미지가 압권으로 다가왔다시집 전체적으로 시적 긴장감이 탄탄하게 잘 유지되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그러나 부산 시단의 주조를 이루는 기존의 모더니즘 성향과 차별화된 지향점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환의 아무에게도 해독되지 않는 문장은 부산 시단에서 약세로 돌아서고 있는 리얼리즘의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이환 시인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자행되는 기만행위와 유포되는 허위의식이로부터 발생하는 억압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천착하고 있으며이러한 시적 사유를 정제된 언어로 간결하고도 날카롭게 묘파해내는 시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그러나 독자의 사유와 감성 체계를 뒤흔드는 시 텍스트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이정모의 백년의 내간체는 일부 시 텍스트에서 형식적 안정감이 떨어지는 결함을 노출하기도 했다그러나 이정모의 시집은 밀도 높은 언어를 통해 독자를 압도하는 드높은 서정의 세계를 이루어내고 있다일상의 서정을 초과한 그것은 시집 제목이 말해주듯이 오랜 세월을 거쳐서 응축된 시인 특유의 삶의 서러움과 그리움을뿐만 아니라 이 세계를 마주한 영혼의 웅숭깊고도 세밀한 감성의 풍경을 펼쳐보인다이정모의 시집은 마치 시의 끝을 보고자 하는 태도로 일관한다시의 끝이란 곧 시의 궁극이며시인의 살아온 삶의 궁극이자 사유의 궁극이기도 하다궁극에 닿고자 하는 불가능한 열망이 시의 언어와 이미지의 배음(背音)으로 울려 퍼질 때 시인의 열망에 우리 역시 동참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인데그것은 시인과의 행복하고도 아픈 동행이 아닐 수 없다그 동행을 통해서 우리는 시인이 가닿은 세계의 한 풍경에 때로는 황홀하고 때로는 서럽게 물들고 만다육체와 정신의 소진 속에서 사투하듯 쌓아놓은 시의 성채는 시인된 자가 감내하지 못할 무게를 기어이 감내해내는그럼으로써 스스로 시인이었음을 마침내 증명해내고야 마는시인들의 오랜 역사에 판각되어있을 시 정신의 가장 유구한 원형이 아닐 수 없다. 

이정모의 시집이 없었다면 2023년 부산작가상 시 부문 수상자를 선정하는 데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었을 것이다하지만드높은 시의 서정과 정신의 세계를 향해 가고자 하는 시적 열망이 석판(石板)에 끌을 긋듯이 한줄 한줄 펼쳐지는 시의 장관은이정모 시인을 2023년 부산작가상 시 부문 수상자로 선정하도록 이끌어주었으며이후에도 그의 시편들이 가슴 속에 내내 남아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 

 


 


   심사위원시인 김 참 · 문학평론가 박대현 


 

□ 수상 소감 

 

∙ 시 부문 손 음 시인이 대신함. 

 

지금 밤의 창고에 등불을 켜는 이가 누구인가. 

 

시인들은 다시 태어나고 삶은 아무 일도 없는 듯 계속될 것이다시인의 죽음은 유독 왜 이리 슬프고 쓸쓸할까키가 훌쩍 큰 그는 잘 웃는 사람이었다그림도 잘 그리고 사진도 잘 찍고시는 죽을 듯이 쓰는 사람이었다. ‘아름다움은 잔인하다고 했던가그는 항암 후유증으로 화장실을 기어가는 순간에도 시의 문장이 떠올랐다 했다. “죽일 놈의 시 같은 것.”이라 했다시가 가진 악마성에는 시인 자신의 가혹한 심장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그 심장을 쪼개는 이 또한 시인이다그는 시인의 말에서 시여이젠 나를 이 길에서 풀어다오.”라고 했지만그 또한 반어법 아니겠는가시인 스스로 시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 아니겠는가그는 불확실한 미래를 가지고 있었지만 수많은 시간이 그를 무너지게 하였지만그는 시의 힘을 믿고 시를 견딘 것이다오직시를 향하여 시를 밀고 간 악투의 사나이 이정모 시인그는 극심한 시의 고독과 고통을 앓다가 갔지만 유언도 없이 생을 마감하는 빗물과 다음 생으로 날아오르는 새 떼들이라는 델 듯 뜨거운 문장을 남겼다. 

백 년의 내간체는 만연체의 아름답고 가혹한 시집으로 우리에게 기록될 것이다오늘 제23회 <부산 작가상>수상으로 우리는 그의 시 세계를 증명하며 또한 그의 세계에 충분히 몰입될 것이다. 

 

*지난 10월 타계하신 이정모 시인의 부산작가상》 수상 소감을 이 어줍잖은 문장으로 대신합니다. 

 


 


시인 손 음.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