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부산작가상 수상자(2021년)
페이지 정보
- 수상작품
- 권유리야 문학평론가<여자와 총, 그리고 걸 크러쉬> (포엠포엠 2021.
- 심사위원명
- 정 훈
- 등록일
- 23-05-05
본문
□ 권유리야 문학평론가 약력
∙ 2004 ≪작가세계≫ 평론 부문 신인상 수상
∙ 2006 <부산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 2015~현재 부산외국어대학교 만오교양대학교 교수
∙ 2020 동북아시아문화학회 우수논문상 수상.
∙ 출간집 ????야곱의 팥죽 한 그릇????(평론집, 새미, 2008), ????이문열 소설과 이데올로기????(평론집, 국학자료원, 2009), ????문화, 백일몽, 대증요법????(평론집, 새미, 2011), ????인간 신해철과 넥스트시티????(공저, 문화다북스, 2015), ????차이의 해석과 문화적 시선????(공저, 한국문화사, 2017)
□ 심사평
∙ 평론 부문
‘평론’이 지닌 ‘기묘하고도 성가신’ 문학 장르의 특성 때문에 평론이라는 이름도, 그리고 평론가라는 직함 자체가 주는 왠지 이상야릇하면서도 무거운 느낌도 ‘밀실에서 속삭이는 진중한 담화’처럼 어딘가 모르게 제3구역의 스산한 공기를 제공하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스산한 공기’야말로 사실 비평의 본질일 것이다. 작품에 대한 환기와 반성을 작가 스스로가 아니라 비평가의 발화로써 문학 장(場)에 넌지시 던지는 일이 비평의 기능이자 숙명이라면 비평은, 또한 비평가는 한 눈은 정면을 보면서 다른 한 눈은 짐짓 딴청부리듯 사각의 모서리를 훑어내려야 한다.
작품의 형식이 말해주는 외연의 진실이 결코 문학 본령을 귀띔하지는 않는다. 아니 문학에 본령이 있을까. 삶에서 길어낸 온갖 정신과 감정의 찌끼들을 정연한 언어논리로 풀어내는 중에, 소스라치듯 존재의 비밀을 엿보고 엿듣게 되는 ‘존재대상’을 환기하는 모든 과정이 문학세계에 수렴된다. 이 과정에서 문학비평은 일종의 신호수 노릇을 할 터이다. 예감과 징후를 아우르면서 해석과 평가를 행하는 비평이 그래서 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다.
권유리야 평론집 『여자와 총, 그리고 걸크러쉬』(포엠포엠, 2021)는 문학에서, 문학을 포함한 문화로 눈길을 넓힌 비평가의 최근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저서다. 문화비평서라 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문학비평에 침투하기 시작한 문화비평 요소들은, 달라진 세태와 풍속을 채찍질 삼아 담론의 영역을 새롭고 첨예하게 헤집었다. 이런 중에 전통적인 문학독자는 대중, 혹은 다중으로 상징되는 또 하나의 문화소비자로 재설정되었다. 문학에서 문화로 이행하는 과정은 비평가에게 기쁨이나 환희를 주기보다는 오히려 쓰라림과 절망 한복판에서 이 세계를 조망하는 의지를 추켜세울 것이다.
권유리야의 비평 또한 그러한 터널 한복판에서, 혹은 끝에서 흘러나왔다고 본다. 그는 이 시대의 문화소비자들이 열광하거나 관심을 두는 매체와 스타, 그리고 사회현상을 놓치지 않고 모니터링하는 모니터다. 그러므로 그의 비평을 읽으면 우리 사회의 그늘과 표정이 보인다. 외면하고 싶은 영역들과 거부하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인 내상(內傷)이 요란한 행위와 말들로 섞여 현상하는 가운데 놓치고 있는 진실을 찾으려 하는 비평가의 탐구욕이 이번 평론집에 그득하다.
새침 떼는 듯 직핍해 들어가는 말의 추진력과, 거두절미하는 듯 조곤조곤 담론의 들머리를 안내하는 비평가의 ‘말재간’도 평론집을 읽는 재미를 돋운다. 그동안 부산 비평에 ‘정통비평’의 흐름이 묵직하게 자리 잡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면, 권유리야가 지향하는 비평은 그간 ‘엄숙하고 냉정한’ 이곳 비평의 온도를 조금은 말랑하게, 그리고 조금은 달콤하게 조절하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동료로서 축하의 손길을 내민다. (심사위원- 정훈)
□ 수상 소감
∙ 평론 부문 : 권유리야
한때는 비평가가 칼을 쥔 자라고 생각하였다. 지금은 비평가가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맨몸의 지렁이로 여겨진다. 메마른 대지를 견디지 못해 습한 땅 속에서 몸을 적시지만, 비가 와 습기가 심하면 또 아스팔트에 올라와 따가운 햇살에 똬리를 튼다. 지렁이는 한 번도 주인인 적이 없다.
비평가는 늘 불행과 다투는 자다. 매일 아침 신을 단념했다가, 저녁에는 다시 신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여자와 총, 그리고 걸크러쉬????에서 나는 우리에게서 나가는 시간이 아닌,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간을 눈여겨 보았다. 숟가락과 젓가락에서 신성을 발견하려는 좌절 섞인 설렘, 흥분 있는 긴장감이 이 책 안에 있다. 천사는 천사의 옷을 입고 오지 않는다. 아브라함에게 온 천사가 행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듯, 나는 리모콘 속에서 황홀한 비전을 경험했다. 그래서 나의 작업에는 성스러운 데에서 세속적인 것을 쫓아내는 대신, 세속적인 데에서 성스러운 것을 되찾는 반복이 있다.
경이로움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상실이다. 이제는 비평이란 무엇인가’보다 ‘무엇이 비평인가’가 더 중요하다. 언저리로 밀어낸 작은 부분들에서 경이로움은 충만하다. ‘비평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 그 시간에 이미 우리 삶 속에 비평이 진행중이어야 하는 것이다.
매번 불행과 다투는 지렁이처럼, 매번 노심초사하는 이방인처럼 늘 경계에 서 있으려 한다.
비평에 대해 돌아볼 시간을 주신 심사위원께 감사드린다.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1120818205268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