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 저자/책명
- 폴 윤 저/황은덕 역/스노우 헌터스
- 출판사/년도
- 산지니/2024년 07월
본문
전쟁으로 인한 깊은 상처
아스라이 전해지는 희망과 치유
요한은 전쟁 발발 후 첫 번째 겨울에 포로가 되었고, 폭격으로 정신을 잃고 눈 속에 파묻혀 있다가 미군들에게 발견되었다. 이 때문에 수용소를 관리하는 미국인들은 그를 ‘스노우맨’이라고 불렀다. 요한이 남쪽으로 향하는 열차 속에서 본 피난민 가족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필사적으로 생필품을 찾으려고 눈 속을 헤집는 스노우 헌터스 즉, '눈 사냥꾼들'이었다. 브라질에서 살아가며 요한은 고향과 전쟁의 기억을 종종 마주하고, 때로는 그에 압도된다.
요한의 일상을 잠식한 전쟁의 후유증은 재단사 기요시, 정원사 페이쉬, 거리의 아이들 등 브라질에서 만난 이들로 인해 점차 옅어진다. 이들의 친절한 과묵 속에서 요한은 머뭇거리지만 정확한 지점을 향해 서서히 나아간다. 소설을 읽으며 독자들은 요한이 회복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함께하게 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는 여전히 늘어나고 있는 지금. 사라지지 않는 전쟁으로 인해 슬픔과 무기력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스노우 헌터스』는 위로와 함께 아스라한 희망을 건넨다.
한국전쟁 후 제3국으로 향한 북한군 포로 요한,
그리고『광장』의 이명준
그 겨울, 비가 내릴 때, 그는 브라질에 도착했다. _ p.15
요한은 비가 내리는 겨울, 바다를 건너 브라질에 도착한다. 북한도 남한도 아닌 중립국, ‘브라질’에 도착하면서 서사가 시작되는 『스노우 헌터스』는 『광장』의 이명준을 떠오르게 한다. 이명준은 중립국을 선택하며 좌우 이념의 체계를 넘어 ‘중립’이라는 새로운 선택지와 비전을 제시했지만 한반도를 떠나 인도를 향하던 도중에 선박에서 투신자살한다. 이명준이 포기한 중립 또는 제3국의 삶이 어떠할지 궁금해하던 독자들은 요한을 통해 그 삶의 가능성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의 기억 속 전쟁터와 포로수용소는 눈이 흩날리는 한겨울이자 밤의 세계이다. 그런 그에게 브라질, 즉 중립국의 미래는 태양이 강렬한 곳, ‘더 이상 밤이 없을 것 같은’ 세계이다. 전쟁의 상처와 고통이 남아 있는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차가운 겨울이 존재하지만, 브라질에서 그는 따뜻한 환대와 희망을 체험하고 점차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난다. 이처럼 『스노우 헌터스』는 한국전쟁 문학사의 계보 속에서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하며 중요한 서사로 자리매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