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 저자/책명
- 김수원/아무것도 아닐 경우
- 출판사/년도
- 호밀밭/2024,08
본문
“시를 읽는 일은
사람을 읽는,
사람으로 살기 위한 방편이다.”
시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기에
시를 통해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이제는 시를 읽지 않는 시대다. 서점의 시집 코너는 구석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아직도 시를 밥벌이용으로 여긴다면 굶어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등단 첫해 시 두 편의 원고료로 5만 원을 받았다며, 청탁만으로 감격할 일이었으나 시를 써서는 사람으로서 살기가 어렵다고 회고한다. 이상한 일은 그럼에도 대한민국에 끊임없이 시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막연하고 아무도 읽지 않는 시. 세상이 시를 읽지 않는 이유는 시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시가 발생하는 연유 또한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아무것도 아닐 경우’에 천착하여 시를 탐독하고 세상을 들여다본다. 의미가 과잉되고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오며, 인간 모두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에서 아무것도 아닌 시가 우리 곁에 있다. 시를 읽는 일은 사람을 읽는, 사람을 읽기 위한 방편이다. 시인이나 문청이나 이처럼 시의 역할을 믿기에 열악한 조건을 무릅쓰는 것이리라.
“시는 아무것도 아니다. … 다만 곁에 있을 뿐이다.”
지역으로 묶기엔 부족한
부산 모더니즘 시인 스물
이 책에서 저자는 부산 지역에서 숨 쉬거나 활동하는 시인들을 조명한다. 오늘날이 시를 읽지 않는 시대임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특히 지역이라는 특수성과 ‘난해함’이라는 외면 속에서 기꺼이 버려짐을 감수하는 부산 모더니즘 계열 시인들의 시집을 부러 찾아 읽는다. 그 속에는 지역으로 재단해서는 안 될 도시와 바다와 산과 사람들과 이야기들이 펄럭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곳곳에 피어있는 귀한 이름에 주목한다.
그러나 저자는 지역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걷어내고 오로지 작품만 살핀다. 시인들이 로컬에 기대지 않고 정면승부하고 있으니 해석 또한 그래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1부에서는 이기록, 안민, 정안나, 박서영 시인의 작품을 「감정들」이라는 분류로 묶는다. 2부에서는 안차애, 송진, 김사리, 박길숙, 양아정 시인의 작품을 「상상 밖의 상상」 이라는 단서로 엮고 있다. 3부에서는 강미영, 석민재, 권정일, 박춘석, 신정민의 작품을 「주체 없애기」 라는 주제로 다시금 해석한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채수옥, 김예강, 유지소, 전다형, 유진목, 박영기의 작품을 랭보의 개념인 「견자(見者)의 일」로 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