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상의 시편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최근 몇 년간 그가 보여주었던 문학운동적 활동이 그의 시에 상당 부분 영향을 드리웠을 것이라는 예견 속에서 작품을 읽어나갔다. 그런데 막상 원고를 다 읽고 나서 발견하게 된 그의 시세계는 나의 예상과는 좀 다른 것이었다. 물론 이 시집의 가장 뒷부분에 있는 「친일 문인 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라는 제목의 두 편의 시와 「촛불을 밝히다」와 같은 시는 그의 문학사적 신념이 비교적 명료히 나타난 것으로, 다른 시에서의 “불확실성 시대에 나는 적당히 타협할 우군도 없다”(「나트륨」)는 표현이나, “정확한 절단이 가끔 필요한 삶”(「도림동 철공소」)과 같은 엄밀한 현실 인식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정치와 역사와 문학에 대한 시인의 입장과 시각을 명료하게 진술하고 있었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정치적·역사적 질곡에 대한 시인의 비타협성은 이를테면 「저격수」 같은 작품에서 상징적으로 잘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이 시의 도입부에서 시인은 현실을 “무덤 속 혹은 구름 속”으로 규정한다. 역사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부조리성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어서 시인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가치평가를 “역사에 맡기자는 주장에 저격수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 시 속의 “저격수”는 “어금니를 깨물며 방아쇠에 검지를 올려놓”은 채 “목표물”을 향해 “총구”를 고정시키고 있는데, 그는 결국 손가락을 당겨 “목표물”을 향해 총알을 “격발”한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는 것은 저격의 목표물만이 아니다. 그 역시 대응사격에 의해 “조준경이 깨”진 상태로 “심장에서” “피”를 내뿜으며 죽게 된다. 결국 “그와 목표물은 한날한시에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된 셈인데, 이것을 통해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한 줄의 역사적 사건 속에 숨어 있는 서로 다른 비타협적 신념과 항쟁의 격발에 대한 정당한 가치평가와 의미화가 필요하다는 의지 또는 신념이다. 비유컨대 저격수의 “격발”의 의미를 정치적으로 의미화하는 것이 역사이며, 역사의 해석과 판단을 둘러싼 의미론적 항쟁에 참여하는 게 시인의 신념이라는 것을 이 시는 잘 보여준다. (중략) 권위상은 개인적 삶과 역사적 기억에 숨겨져 있는 ‘이면의 진실’을 성찰하고 표현하는 데 그의 시적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의 시에 항용 등장하는 아이러니의 어법과 인식은 개인적·역사적 진실을 탐구하기 위한 시적 망원경이자 현미경이다. 시적 진실과 역사적 진실에 대한 두 방향에서의 탐구는 권위상의 시를 더욱 풍부하게 발성하게 만들 것이다 - 이명원(문학평론가ㆍ경희대 교수) 작품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