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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향 장편소설[파도가 무엇을 가져올지 누가 알겠어]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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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향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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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교사이기도 한 소설가 박향이 새 장편소설을 냈다.
제목이 살짝 긴 ‘파도가 무엇을 가져올지 누가 알겠어’(나무옆의자)는 그가 두 번째로 쓴 청소년 소설이다.
2010년 실천문학사를 통해 펴낸 ‘얼음꽃을 삼킨 아이’는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 10대를 보낸 한 소녀의 이야기로,
억압의 시대를 통과하는 청소년의 아프고 충격적인 성장담이 작은 반향을 일으켰다.
이번 새 작품에서도 10대들이 맞닥뜨리는 시련은 만만찮지만 그 결은 보다 일상적이고 유쾌하다.
배경 시대가 다르기도 하지만, 작가의 아들이 고교생일 때 쓰기 시작한 소설이라니 그 나이 아이들이 견뎌야 할 아픔의
무게를 조금은 덜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도 투영되지 않았을까.
고등학생 현제는 엄마에게 단단히 실망한 상태다.
“하루 이틀 결석이 대수냐”며 1년에 한 번은 자유를 주겠노라고 ‘쿨내 진동’ 호언장담한 엄마가
이제 와서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며 발을 뺀 것이다.
우울한 상황에 처한 친구 제현과 짧은 여행을 다녀오려는 것뿐인데
사사건건 구속하려 드는 엄마가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부모님이 이혼한 뒤 제현은 찜질방에서 지낸다.
엄마는 외국으로 가버리고 아빠는 ‘새 아내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제현과 함께 살기를 꺼린다.
부모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모범생으로 살아온 제현은 어쩌다 보니 가출 소년이 됐고, 학교에도 나가지 않게 됐다.
한편에서 다른 이야기가 진행된다. 혜진의 옛 기억은 끔찍하다. 이복 오빠는
부모의 학대를 받다 죽음을 맞았고, 토막 나서 여기저기 유기된 건이의 시신 일부는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살아남은 혜진은 밤마다 어느 고등학교 담을 넘어 ‘모종의 의식’을 치르고 제현이 우연히
그 뒤를 밟으면서 두 이야기는 하나가 된다.
소설은 저마다의 아픔을 가슴에 품은 아이들의 성장담이기도 하고,
이들이 더 큰 상처를 지닌 친구를 구원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모험담이기도 하다.
“쿨한 척만 한다고 현제가 비난한 엄마, 사실은 그게 나”라는 작가에 따르면 어른들의 느린 성장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석 달 간 화장실에 갇힌 채 계모에게 끔찍한 폭행을 당한 끝에 사망한 ‘원영이 사건’이
소설의 모티브가 됐다”고 말한다.
“너무 마음이 아파 어떻게든 써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마침 둘째 아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청소년 소설을 하나 더 내보자고 계획하던 때라 평범한 고등학생들의
스토리와 엮어서 쓰기 시작했어요.”
요즘 10대들과 비교하면 등장인물들이 너무 점잖고 착한 것 아니냐고 묻자 작가는
“사실은 그런 아이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물론 험악한 비속어는 많이 쓰죠. 그래도 알고 보면
다들 어른들이 만든 테두리 안에서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이에요.
우리 사회가 하루아침에 아이들을 보호막 밖으로 내모는 사례가 훨씬 더 많죠. 얼떨결에 가출 소년이 된 제현이처럼요.”
작품 제목 ‘파도가 무엇을 가져올지 누가 알겠어’는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 나오는 톰 행크스의 대사에서 따왔다.
“우리가 10대였을 때, 우리를 둘러싼 작은 일이 어마어마한 불행처럼 느껴지곤 했잖아요.
부모님의 잦은 다툼이라든가, 가세가 기울었다든가. 지나고 나면 작은 일들.
그런데 그런 일이 예민한 청소년기에는 내 인생을 뒤덮을 재앙처럼 느껴져요.
그런 것들이 그저 인생에 들고나는 파도에 실려 오는 ‘어떤 것’일 뿐이라는 걸 말해 주고 싶었어요.
인생의 파도가 싣고 온 불행이나, 쓸모없는 참견이라고 느꼈던 것들이 나중에는 내 인생에 유용한 ‘무엇’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요.
무인도에서 톰 행크스가 건져 올린 레이스 치마가 고기 잡는 그물이 되는 것처럼요.”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